엘레나 리바키나(23·세계랭킹 23위). AP=뉴시스
러시아 출신 귀화선수 엘레나 리바키나(23·세계랭킹 23위)가 우승 확률 1%를 뚫고 새 조국 카자흐스탄에 첫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안겼다.
리바키나는 9일(현지시간) 런던 근교 올잉글랜드클럽 센터코트에서 열린 윔블던 테니스대회 여자단식 결승에서 온스 자베르(28·튀니지·2위)를 2-1(3-6 6-2 6-2)로 꺾었다. 여자테니스협회(WTA) 세계랭킹 20위권 밖 선수가 윔블던에서 우승한 건 2007년(비너스 윌리엄스) 이후 15년 만에 처음이다. 다만 윌리엄스는 이미 세계랭킹 1위에 올랐었고 윔블던 우승도 3차례(커리어 통산은 5차례)를 거둔 뒤 이룬 성적이었다.
승부예측업체 시저스포츠북이 대회 전 예측한 리바키나의 우승 가능성은 1%였다. 리바키나 스스로도 “윔블던에서 둘째 주를 맡게 되리라 기대하지도 못했는데 놀랍다”며 “지금의 행복감을 표현할 말을 못 찾겠다”고 했다.
대회기간 리바키나는 러시아와 자신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을 계속 받아왔다. 우승을 한 뒤에도 국적에 대한 논란이 일자 리바키나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난 카자흐스탄 대표라는 것이다. 태어난 곳은 내가 선택하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리바키나는 부모님이 살고 계신 모스크바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느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자신이 비 시즌 슬로바키아, 두바이에서 훈련한다고만 답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말하자면 난 어디에서도 살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리바키나처럼 역시 이번 결승전이 생애 첫 그랜드슬램 결승 진출이었던 자베르는 아프리카 출신 최초 그랜드슬램 우승을 미루게 됐다. 이날 패배 전까지 자베스는 11연승 중이었고, 이 연승은 모두 잔디코트에서 쌓은 기록이었다. 하지만 리바키나는 큰 키에서 나오는 강력한 서브를 앞세워 반격을 시작했다. 결국 2006년(아멜리 마우레스모) 이후 16년 만에 윔블던 여자단식에서 첫 세트를 내주고 우승한 선수가 됐다.
우승을 확정지은 뒤에도 흔한 포효 한번 내지르지 않았던 리바키나는 자베스와 코트에서 인사한 뒤에야 공중에 주먹을 뻗는 소박한 승리 세리머니를 했다. 하지만 코트 위에서 감정표현이 거의 없던 리바키나도 부모님의 반응이 어떨 것이냐는 질문에는 “아마도 엄청 기뻐하실 것”이라며 숨겼던 눈물을 쏟았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