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서울 은평구 앵봉산 인근 주택가. 하얀 방역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은평구 보건소 직원들이 살충제가 든 연무기를 들고 분사를 시작했다. 하얀 살충제 연기가 수초 간 퍼진 후 길가에는 검은 색 벌레 사체 수십 마리가 쌓였다. 빗물이 고인 곳에도 벌레들이 둥둥 떠다녔다.
최근 은평구 등 수도권 서북부 일대에 대규모로 출몰한 털파리떼 방역 현장이다. 암수 둘이 쌍을 지어 붙어다녀 일명 ‘러브버그(사랑벌레)’라고 불리는 곤충이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털파리과 플라시아속’에 속하는데 국가생물종목록에 기록된 털파리 12종이 아닌 ‘13번째 신종’이라고 한다.
●도심 뒤덮은 러브버그…은평구 민원 3000건 폭발
손기문 은평보건소 감염병관리팀장은 “털파리류는 주로 산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산 주변 주택가와 민원이 들어온 곳 위주로 방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은평구에 따르면 ‘벌레 때문에 불편을 겪고 있다’는 민원은 1일부터 약 3000건이나 접수됐다. 은평구 뿐 아니라 서대문구, 마포구, 성북구, 경기 고양시 등도 러브버그가 나타나 지자체에서 방역 조치에 들어갔다. 지난주 초 폭발적이었던 민원은 러브버그 일부의 수명(3~7일)이 다하면서 다소 잦아든 상태다.이례적인 러브버그의 대규모 출현을 두고 ‘이상기후’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겨울이 유독 따뜻하고 습한 기운을 보여 번데기의 생존률이 높았는데, 올 봄 가뭄까지 겹치면서 번데기들이 순차적으로 성충이 될 기회를 잃었다는 것이다. 이동규 고신대 보건환경학부 석좌교수는 “늦어도 6월 초부터는 파리로 부화했어야 할 번데기들이 건조한 상태에서 대기하다 최근 장마가 시작되면서 대량 부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가정용 스프레이로도 퇴치 효과
부화한 성충 파리들이 불빛을 쫓아 주택가로 내려오면서 시민들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많게는 수백 마리의 벌레가 대규모로 출몰해 시민들에게 혐오감을 주기 때문이다. 은평구에 사는 직장인 임모 씨(27)는 “퇴근할 때마다 현관문에 러브버그 수십 마리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눈을 감고 빠르게 문을 여는데 대체 언제 없어질지 모르겠다”고 했다.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벌레들이 창문에 빈틈없이 붙어 징그럽다“는 등의 불만글이 속출하고 있다. 일부는 퇴치 방법을 다룬 글을 공유하기도 한다. 모기를 잡는 일반 가정용 스프레이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식이다. 불빛이나 밝은색에 반응하기 때문에 커튼으로 빛을 차단하거나 어두운 색 옷을 입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다만 엄밀히 따지면 러브버그는 해충이 아니다. 사람을 물지도 않고, 독성도 없다. 오히려 낙엽이나 동물의 배설물을 분해해 환경정화를 하는 익충에 가깝다. 수명도 짧아 금방 사라질 가능성도 상당하다. 은평구 관계자는 “구민들이 불편을 느끼는 주택가 위주로 방역을 하되 생태계 안에서 역할이 있는 만큼 산에 직접 방역을 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8월 초 러브버그가 또다시 나타날 가능성을 제기한다. 양 교수는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러브버그가 산란 활동을 계속하면 30~40일 가량 후에 다시 성충들이 나타날 수 있다”며 “다만 자치구가 방재 작업을 하는 데다 주택가로 내려온 벌레들은 다시 서식지로 돌아가지 못해 개체수가 이번만큼 많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