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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을 든 ‘덤보’… 부진 털고 마음의 평화도[김종석의 굿샷 라이프]

입력 | 2022-07-11 03:00:00

전인지가 박선미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그림 작업을 하고 있다. 올 연말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는 전인지는 그림을 통해 새로운 동기부여가 됐다고 밝혔다. 브라이트 퓨처 제공


김종석 채널A 성장동력센터 부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전인지(28)는 요즘 골프 클럽을 잠시 내려두고 연필과 붓을 잡는 시간이 늘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뛰다가 2일 귀국한 뒤 박선미 작가 스튜디오에서 그림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15일 출국 때까지 주로 캔버스와 씨름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신발이나 캐디 백에 그림을 그렸던 전인지가 본격적으로 미술과 인연을 맺은 건 지난해 말 박 작가 전시회 방문이 계기가 됐다. “평소 그림에 관심이 많았는데 박 작가님을 만난 뒤 용기를 냈어요.” 올해 초 출국할 때 미술 도구를 잔뜩 챙긴 전인지는 LPGA투어 생활 틈틈이 드로잉 작업에 매달렸다. 12월 중순 서울 본화랑에서 박 작가와 컬래버레이션 전시를 하기 위해 하반기 창작 활동에 몰입할 생각. 전인지는 별명인 ‘덤보’(아기 코끼리)를 주로 그리고 박 작가는 자신의 분신과 같은 앵무새 그림을 내세울 것으로 알려졌다.

전인지는 지난달 메이저 대회인 위민스 PGA챔피언십에서 3년 8개월 만에 다시 우승하며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전인지의 부활에는 미술 활동도 경기력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힘든 시기였지만 그림 그리기가 흔들리는 멘털을 바로잡는 힘이 됐어요. 잡념도 없앨 수 있었죠.” 골프 애호가인 박 작가는 “그림과 골프는 일맥상통한다. 둘 다 혼자서 온전히 나를 실어 보내는 게임이다”고 말했다.

코칭심리 전문가인 정그린 씨는 “그림 그리기는 자신이 좋아하는 색감을 통해 여러 감성을 자극하고 감정 해소와 안정감을 이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차분히 미술 작업을 하다 보면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휴식할 수 있고 기분이 상승돼 본업(운동)으로 돌아가면 더 집중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릴 때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유와 창의력을 발휘하면 힐링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골프 스타 전인지(왼쪽 사진 오른쪽)가 박선미 작가와 그림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전인지 인스타그램

미술활동은 노년층 건강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미국신경과학회 연구에 따르면 노년기에 드로잉, 페인팅, 조각 등을 하면 초기 치매의 위험이 발생할 확률이 73% 감소한다. 창의적인 취미를 바쁘게 즐기다 보면 행복감이나 성취감이 커져 우울증에도 덜 걸린다고 한다. 성봉주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수석연구위원은 “그림 그리기는 걷기와 더불어 시니어에게 최고 취미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만족감과 자존감을 키워준다. 함께 하면 고립감에서 벗어나 사교성을 키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골프가 안 된다고 죽어라 공만 치다 보면 심신이 망가질 수 있다. 멍하니 불이나 강, 숲만 바라봐도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가슴 한구석에 무거운 돌덩이가 생긴 것 같다면 색칠하기라도 해보면 어떨지. 묵은 체증이 사라지고 새 의욕이 생길지 모른다.


김종석 채널A 성장동력센터 부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