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조지 워싱턴도 인삼 재배했다고? 서구서 잊혀진 인삼의 역사 복원

입력 | 2022-07-11 03:00:00

설혜심 교수 ‘인삼의 세계사’, 英 유명 출판사서 번역 출간
17, 18세기 서구 인삼무역 성행… 태국, 佛 루이 14세에게 진상도
“유효성분 추출 못하자 폄하”… “서구 중심 세계사의 공백 채워”




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57·사진)가 2020년 내놓은 ‘인삼의 세계사’(휴머니스트)가 8일 영국 라우틀리지 출판사를 통해 번역 출간돼 세계에 소개된다. 1836년 창립된 라우틀리지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장 폴 사르트르, 버트런드 러셀 등 최고 지성의 책을 펴낸 인문학 분야 세계 최대 규모 출판사다. 캐나다 역사학회가 ‘인삼의 세계사’를 서평 목록에 올리며 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20년 국내 출간된 ‘인삼의 세계사’(왼쪽 사진)와 8일 영국 라우틀리지 출판사에서 출간된 영문판 ‘A Global History of Ginseng’. 휴머니스트 제공

가장 한국적인 인삼의 세계사에 서구 학계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서구 중심적인 시각에서 볼 수 없었던 문화교류사의 빈틈을 채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7, 18세기 서구에서 인삼은 무역과 의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상품이었지만 그간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이 책은 17세기 후반 세계 교역 무대에서 ‘동양의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며 큰 주목을 받았던 인삼의 역사를 복원한다. 1686년 태국 외교사절단은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에게 인삼을 진상하며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왕립과학원에서는 인삼 연구에 나섰으며 유럽 곳곳의 약초재배원에서 인삼 재배를 시도했을 정도로 인삼 열풍이 불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도 수익성이 좋다는 말에 인삼 재배에 나섰다.

하지만 18세기 후반이 지나며 인삼은 서구 역사에서 잊힌다. 설 교수는 책에서 서양이 인삼과 심마니에 덧씌운 미개한 이미지의 기원을 살핀다. 당시 서양 의학계가 인삼의 유효 성분 추출에 실패하자 동양의 추출 기술에 열등감을 갖고 인삼의 약성을 폄하했다는 분석이다. 주 교수는 “치밀한 사료 연구를 바탕으로 인삼에 대한 서구 학계의 편향적 시각에 반격을 가했다”고 분석했다.

국가 차원을 넘어 세계사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최근 세계 사학계의 연구 추세와 맞닿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인삼이 17세기 동아시아와 유럽 등으로 흘러들어가는 과정을 추적하며 일국사(一國史)를 탈피해 지구적 관점을 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국주의사 분야 세계 석학으로 알려진 존 매켄지 영국 랭커스터대 명예교수는 “인삼이 어떻게 서구 무역의 중심에 놓이게 됐는지 추적하며 경제, 문화, 의학사로 주제가 확장된다. 인삼이라는 작은 틈새로 모든 종류의 분야를 조명해냈다”고 평가했다.

설 교수는 ‘소비의 역사’ ‘지도 만드는 사람’을 비롯해 여러 저서를 집필하며 문화사와 미시사(微視史)에 천착해왔다. 그는 “동양 여성으로 서양사를 연구하며 늘 소수자 감수성을 갖고 역사를 바라봤다”며 “앞으로도 서양사에서 가볍고 하찮다고 치부해왔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삶 깊숙이 녹아들었던 작은 것들의 역사를 탐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