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와 계약한 방산(防産)기업이 휴대전화 해킹 스파이웨어 ‘페가수스’를 개발한 이스라엘 NSO그룹 인수를 추진하다 무산됐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0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NYT는 이번 인수 추진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 방산기업 L3해리스가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의 은밀한 지원을 받아 보안업체 NSO그룹 인수 협상에 나섰으나 백악관 반대로 무산됐다고 전했다.
NSO그룹은 초강력 스파이웨어 페가수스를 개발한 업체다. 페가수스는 컴퓨터나 휴대전화에 침입하면 악성링크를 클릭하지 않아도 사진과 영상, 문자메시지와 통화 목록 같은 데이터를 빼낼 수 있는 것은 물론 휴대전화 위치 추적과 도·감청을 할 수 있다. 2015년 캘리포니아주 샌버나디노 총기 테러 당시 애플이 테러범 부부의 휴대전화 비밀번호 해제에 협조하지 않자 미 정부가 페가수스를 활용해 비밀번호를 해제해 주목 받은 뒤 세계 수십여 개국 정보기관에 수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L3해리스의 NSO그룹 인수 추진은 상무부 제재 이후 추진됐고 이스라엘 국방부도 협상에 참여했다고 NYT는 전했다. L3해리스는 협상 과정에서 NSO그룹 휴대전화 버전 페가수스 프로그램인 ‘제로 데이즈(Zero Days)’의 미국 정보 공유 동맹 ‘파이브아이즈’ 국가 판매를 전제 조건으로 미 정부 기관들이 인수를 지원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브아이즈는 미국과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국방부는 미국 이외 파이브아이즈 국가에 대한 페가수스 판매 승인 권한을 이스라엘 정부가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백악관이 “미 정부의 방첩, 안보에 심각한 우려를 미칠 수 있다”고 반대하면서 인수 협상이 무산됐다는 것이다.
CIA와 FBI가 2018, 2019년 페가수스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미국이 파이브아이즈 국가에 이 프로그램 판매를 전제로 인수를 추진한 것은 사이버전(戰)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페가수스 구입 요청에 대해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거절한 바 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