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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정임수]국민연금 넉 달간 36조 손실…내년 하반기 개혁은 늦다

입력 | 2022-07-12 03:00:00

정임수 경제부 차장


최근 증시 하락장에서 참담한 투자 성적표를 받아든 건 ‘개미’뿐만이 아니다. 올 들어 4월 말까지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 수익률은 ―3.79%이다. 자산별로 국내 주식 수익률(―7.52%)이 가장 나빴고 해외 주식(―6.03%)도 쓴맛을 봤다. 이에 따라 불과 넉 달 새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 손실액은 36조 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607만 명에게 지급한 연금 29조 원보다 많은 돈이 한순간에 사라진 셈이다.

물론 국민연금의 운용 자산 규모를 감안할 때 단기 수익률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주가나 금리 사이클에 따라 피하기 힘든 수익률 등락이 있을 수 있다. 글로벌 긴축 움직임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자산시장이 요동치면서 올해 캐나다,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해외 연기금도 손실을 내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공포로 자산시장 충격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연기금의 리스크 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 국민연금은 리더십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2명이 연이어 낙마하면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자리는 석 달째 공석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는 올 상반기에만 14명이 퇴사했다. 본부가 2017년 전북 전주로 이전한 뒤 연평균 28명이 떠났다. 운용 인력의 연이은 이탈은 국민연금의 투자 역량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대로라면 국민연금의 올해 연간 투자 수익률도 4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수익률이 악화되면 국민연금의 적자 및 고갈 시기는 앞당겨질 수밖에 없다. 현행 제도가 유지될 경우 2055년 국민연금 기금이 바닥나 1990년생 청년들부터는 국민 세금으로 연금을 줘야 한다는 예측이 이미 나와 있다.

여기에다 새로 나온 국민연금연구원의 중기재정전망을 보면 올해 34조 원인 연금 지출은 2026년 53조 원으로 늘어난다. 반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는 50만 명 가까이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후 본격적으로 연금을 받게 된 데다 생산가능인구는 줄고 있는 탓이다.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해 연금 개혁의 필요성은 더 커졌지만 새 정부에서도 벌써부터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연금 개혁을 핵심 국정과제로 꼽으면서도 구체적인 밑그림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내년 3월까지 국민연금 재정을 다시 계산한 뒤 하반기에나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또 사회적 대타협 기구인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신설해 개혁을 논의할 계획이다.

하지만 내년 후반기로 가면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 개혁을 밀어붙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연금 개혁은 지금의 ‘덜 내고 더 받는’ 불균형 구조를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바꾸는 게 핵심인데, 표를 의식한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때문에 역대 정권마다 개혁은 흐지부지됐고 연금 보험료율은 24년째 그대로다. 대통령이 집권 초기인 올해 안에 구체적인 개혁 청사진을 내놓고 국민을 직접 설득해야 하는 이유다. 아울러 국민연금이 안정적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정부 입김에서 벗어난 기금 운용 지배구조도 만들어야 한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