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폭등에도 저금리 유지로 GDP보다 많은 가계부채 초래한 한은 인플레로 월급 생활자 가장 큰 고통, 과감한 금리 인상으로 대응해야
송평인 논설위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자아비판을 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에서 연준 의장을 맡아 헬기로 돈을 뿌리듯 돈을 푼 벤 버냉키는 현 의장인 제롬 파월의 인플레이션 대응이 너무 늦었다고 비판했다. 버냉키의 후임이자 파월의 전임인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고 봤던 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연준 바깥에서는 버냉키를 조준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쉬운 돈의 영주들(The Lords of Easy Money)’에는 버냉키 의장 당시 토머스 호니그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이유 없이 큰 폭으로 오른 캔자스시티 농산물 가격을 증거로 들면서 버냉키의 양적완화에 8차례나 반대한 내용이 나온다. 버냉키가 시작했으나 그를 포함해 누구도 끊지 못한 팽창적 통화정책은 자산가격을 필요 이상으로 부풀려서 월가의 탐욕만 채우는 결과를 빚었다.
미국 연준은 자아비판이라도 하지만 한국은행과 금융통화위원회는 자기반성이 없다.
집값이 전셋값과 큰 격차를 벌리며 폭등하자 전세살이를 당연시하던 2030세대까지 주택 구입에 뛰어들었다. 집값이 오른 나라가 우리만이 아니지만 젊은 부부들이 집값의 태반을 빚으로 조달하며 집 사는 데 몰두한 나라가 또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한은과 금통위는 미국 연준을 곁눈질하며 약간 앞서가거나 약간 뒤따라가는 식으로 안이하게 대응했다.
통계청이 내는 소비자 물가지수에는 임차(전월세)에 드는 비용만 들어갈 뿐 자가 소유자가 주거를 위해 지불하는 비용, 즉 주택 구입을 위해 빌린 돈의 이자 비용 등은 들어가지 않는다. 미국 등 주요국에서는 이들 비용도 모두 물가지수에 포함한다. 이런 차이로 우리나라의 물가지수는 낮게 나오고 집값 상승기에는 훨씬 낮게 나온다.
가계대출이 급등하면서 자가 소유자의 주거비도 물가지수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왔지만 통계청은 무시했고 한국은행은 ‘집은 소비재보다는 자산’이라는 인식을 고수했다. 통계청의 물가지수가 낮게 나오니까 한은은 필요 이상의 저금리를 유지했고 필요 이상의 저금리는 다시 부동산 가격을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세계 경제를 강타한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현금 압박(cash push)만도 아니고 원가 압박(cost push)만도 아니다. 둘이 긴밀히 연결돼 있다. 그동안은 미국 등이 돈을 풀어도 러시아와 중국의 값싼 원자재와 원유를 사는 데 흘러들어가 물가를 올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나 지금은 풀린 돈이 서방 세계에서만 돌고 있다. 신(新)냉전의 추세가 변하지 않는 한 공급망 교란은 피하기 어렵고 물가 상승은 일시적이지 않다. 밀턴 프리드먼의 말대로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통화적 현상이다. 원가 압박처럼 보여도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지 않다면 통화적 현상이다. 소비 절약으로는 극복할 수 없고 과감한 금리 인상만이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