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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편지[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51〉

입력 | 2022-07-13 03:00:00


“아들아, 나는 너를 학대하였다. 영원히 미안할 것 같다.” 중국의 현대 번역가 부뢰(傅雷·1908∼1966)가 피아니스트 아들 부총(傅聰)에게 보낸 편지에서 했던 말이다. 폴란드 유학 준비를 위해 아들이 베이징으로 떠난 다음 날 쓴 편지였다.

그는 그러한 죄의식을 느낄 정도로 엄한 아버지였다. 그는 자식의 모든 것을 통제했다. 식사 예절까지 그랬다. 어린 아들에게서 음악가 기질을 발견하고 집에서 가르치기 시작하면서부터 더욱 그랬다. 아들은 열 살 때부터 상하이교향악단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마리오 파치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물한 살에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3위로 입상하고 그것을 계기로 폴란드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외국에 있는 아들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보내 음악에 앞서 인간이 되고 겸손하라고 가르쳤다. “일이 잘될 때일수록 깊은 물을 만난 듯, 얇은 얼음을 밟듯 신중하고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한다.” 그렇게 엄격했던 것은 인간은 깎고 다듬어야 큰 그릇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덕에 아들은 좋은 품성의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그러나 시대는 그가 아버지 역할을 계속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광란의 중국 정치는 아버지이기 전에 뛰어난 지식인이자 번역가였던 그를 우파로 몰았다. 그는 문화혁명 기간에는 새파란 나이의 홍위병들에게 사흘 동안 밤낮으로 가택수색을 당하는 치욕을 당했다. 그때 그의 고모가 맡긴 상자에서 장제스(蔣介石)의 얼굴이 그려진 거울이 나왔다. 그는 반동으로 몰렸다. 그러나 억울해도 변명하지 않았다. 그 대신, 부인과 함께 목을 매 자살했다. 그의 나이 쉰여덟이었다. 홍위병들로 인해 자식은 부모를 잃었고 중국은 당대의 석학을 잃었다.

그의 편지를 모은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국내 출간 2001년)만이 뒤에 남아 그가 얼마나 품격 있는 당대의 지식인이었는지를 증언한다. 그는 아들을 학대했다고 말했지만, 편지들을 보면 이 세상의 아버지들을 부끄럽게 할 만큼 넓고 깊고 따뜻한 아버지였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