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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당나귀 수난 뒤엔… 세상 향한 ‘작가의 외침’

입력 | 2022-07-14 03:00:00

[한시를 영화로 읊다]〈41〉말과 당나귀



영화 ‘당나귀 발타자르’에서 인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당나귀. 스벤스크 필름인더스트리 AB 제공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영화 ‘당나귀 발타자르’(1966년) 속 주인공은 당나귀로, 영화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당나라 시인 이하(李賀·790∼816)는 늘 당나귀를 타고 나가 당나귀 위에서 시를 짓곤 했다. 그는 특히 ‘말(馬)’을 제재로 수많은 시를 남겼다. 이는 한시사에서도 매우 특별한 사례다.

23수인 ‘말’ 연작시에는 신화 전설과 역사 속 명마들이 등장한다. 이하는 포부를 펼치지 못한 채 26년의 짧은 삶을 마쳤다. 말에는 그런 시인의 모습이 일부 투영됐지만,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재들이 인정받지 못하는 당대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망한다. 각 시의 의미에 대해선 해석이 엇갈리지만, 사물에 빗대어 세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시임은 분명하다. 이들 시는 한날한시에 지은 게 아니라고 한다. 어쩌면 시인은 삶의 고비마다 느끼고 깨달은 바를 말의 형상에 담은 건지도 모른다.

인용한 시에선 인간의 학대로 초라한 몰골이 된 말에 주목한다. 이 시의 말은 인간과 말의 교감을 다룬 영화들보다 ‘당나귀 발타자르’ 속 당나귀와 유사한 점이 더 많다. 당나귀는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갖은 고통을 겪는다. 사람들은 당나귀를 서커스단의 구경거리로 성가시게 만들거나 꼬리에 재미로 불을 붙여 괴롭힌다. 마지막엔 밀수품을 옮기다 국경 경비대의 총에 맞게 한다. 시에서도 말은 ‘한낮의 소금 언덕 위에서, 비틀거리며 먼지바람 맞으며 가는(午時鹽坂上, |}합風塵.)’(열한 번째 수) 등 모진 부림을 당한다. 말과 당나귀의 수난에 마음이 아려온다.

이하의 시는 비평가들에게 기궤(奇詭·기이하고 이상함)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상을 있는 대로 그리기보다 상상과 허구의 세계를 탐닉했기 때문이다. 말이 달려 나가면 여윈 뼈에서 구리쇠 소리가 난다고 표현한 데서도(네 번째 수) 이 점이 잘 드러난다. 브레송의 영화는 전통적인 연출방식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미학을 수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 속 당나귀 역시 무심한 눈으로 인간의 탐욕과 타락을 지켜볼 뿐 극적인 연기 없이 ‘모델’로서만 존재한다.

영화에서 당나귀의 수난이 인간 탐욕에 대한 암유(暗喩)이듯 시에서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 채 함부로 부려지는 말은 현실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인재를 비유한 것이다. 시인은 말에 자신의 고민을 담았고, 감독은 당나귀에 종교적인 염세주의를 투영했다. 당나귀와 말은 작가 의식의 화신(化身)인 셈이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