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 ‘스카겐 남쪽 해변의 여름 저녁’, 1893년.
프랑스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는 박명이 지나는 시간, 즉 낮과 밤의 경계가 되는 신비한 시간대를 연구하며 이를 ‘블루아워(The Blue Hour)’라 명명했다. 이 시간대의 햇빛이 푸르스름한 색조를 띠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매혹적인 블루의 시간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도 ‘블루아워’를 사랑한 화가였다. 특히 해 질 녘의 부드러운 빛을 포착한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42세 때 그린 ‘스카겐 남쪽 해변의 여름 저녁’이 대표작이다. 스카겐은 덴마크 최북단에 있는 조용한 어촌마을이다. 19세기 말 젊은 화가들이 이곳에 모여 예술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는데, 이들을 ‘스카겐 화가들’이라 부른다. 노르웨이 출신의 크뢰위에르가 이곳에 정착한 건 1891년. 파리에서 활동하며 이미 명성을 얻은 그는 곧 예술공동체의 리더가 되었다. 인상주의를 표방한 스카겐 화가들은 자주 어울리며 서로의 그림 모델이 되어주곤 했다. 이 그림 속 두 여인도 스카겐 화가들이다. 왼쪽 여성은 아나 안셰르고, 모자를 쓴 오른쪽 여성은 화가의 아내 마리에다. 크뢰위에르보다 16세 연하였던 마리에는 파리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남편의 재능에 눌려 창작활동을 거의 접은 상태였다. 대신 남편의 뮤즈가 되어 화폭에 새겨졌다.
화가가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블루아워의 표현이다. 해 질 녘 푸른 하늘과 바다는 경계가 없이 하나로 합쳐진 것처럼 보인다. 하얀 모래를 비추는 은은한 빛과 의도적으로 작게 그린 인물들로 인해 스카겐 해변은 더 신비하고 고요해 보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