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업무를 해 온 방역 관료 A의 말이다. 새 정부가 ‘과학방역’을 강조하고 있지만, 일선 공무원들의 일하는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얘기다. A는 “코로나 초기보다 지금 정보의 양이 많아졌지만 아직 충분치 않다”며 “언제나 주어진 근거 안에서 과학적 판단을 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때는 비과학적이고, 지금은 과학적이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의 ‘과학방역’ 기조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말로는 과학을 강조하는데 “과연 실체가 있나”라는 의문이다. 이 같은 의구심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일반 국민조차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의사 결정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발표 과정도 ‘비과학적’이란 인상을 줬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8일 4차 백신을 맞고 “4차 백신 접종 범위 확대안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는 백신 접종 시기와 대상을 정하는 예방접종전문위원회(11일)가 열리기 전이었다. 과학방역의 근거를 제시하는 독립기구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회’ 위원 상당수가 4차 접종에 부정적이었다. 전문가 논의가 끝나기도 전에 한 총리가 접종 확대를 공식화한 꼴이다. 정부 내부에서조차 “과학방역과 배치되는 언사”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확진자 7일 격리 의무 연장 논의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벌어졌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까지 격리 해제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격리 지원금에 투입되는 재정 지출을 줄이려는 의도였다. 기재부 ‘파워’에 밀려 이에 동조한 보건복지부 관료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방역 측면에선 실익이 없다는 반론이 지배적이었다. 방역 전문가들의 반대로 격리 연장 결론이 났지만, 만약 기재부 논리가 관철됐다면 재유행을 막을 과학적 수단을 정부 스스로 포기할 뻔했다.
과학방역이란 큰 방향성에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도한 레토릭은 오히려 정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벌써 국민들은 정부의 방역 조치가 발표될 때마다 “과학적인가 아닌가”부터 따지기 시작했다. 다소 과학적 근거가 부족해도 선제적으로 조치할 부분이 적지 않은데, 이미 정무적 부담이 상당해졌다. 코로나 재유행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과학방역’ 구호를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과학’을 외칠수록 오히려 정부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