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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시험보다 어려운 ‘한국인 테스트’[폴 카버 한국 블로그]

입력 | 2022-07-15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


최근 인공지능 관련 번역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는 필자 자신도 번역할 때 사용하는 기계 번역이나, 혹은 자연어 학습, 머신러닝 같은 여러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이 있는데, ‘미래’가 바로 내 코앞에서 현재 진행 중이라는 것은 정말 놀라운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놀랍게 발전하는 컴퓨터의 지능을 테스트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튜링 테스트(Turing Test)’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튜링 테스트’에 대해 잠깐 설명하면 이렇다. 실험 대상자들이 일단 방에 들어가고 어떤 ‘존재’와 대화를 하고 나온다. 그 어떤 존재는 물론 컴퓨터이지만, 그 실험 대상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대화하게 된다. 만약 대화가 끝나도록 실험 대상자가 대화 상대를 끝까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나온다면 그 컴퓨터는 ‘사람’ 테스트에 패스한 셈이 된다. 이 ‘튜링 테스트’ 부분을 번역하면서, 이 상황을 조금 변경해서 나 스스로에게 적용해 보았다. 외국 사람인 내가 과연 ‘한국인 테스트’(‘단군 테스트’라고나 할까)를 이 컴퓨터처럼 통과할 수 있을까?

일전에 사실 나도 한국 사람으로 뿌듯하게 ‘오인’된 적이 있다. 유선으로 연락 올 때 ‘폴카버 확실히 맞냐’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게다가 내가 출연하는 유튜브 방송이 있는데 그날의 주제였던, ‘한국인 뽑기 게임’에서였다. 끝까지 나를 한국인으로 의심했다. 듣기로는 전화를 무작위로 걸어 외국인과 대화한 한국 참가자들에게 전화 상대자가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를 판단하게 하는 방송도 있었다고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봤던 TV 프로그램 중 무엇이 아직도 기억나는지, 오래된 가수 누구를 좋아하는지, 사투리 단어를 알고 있는지 등등 내가 외국인이라고 들킬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는 그런 문제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군 테스트’ 합격을 바라는 외국인이 있다면 어떤 문제를 공략해야 할까? 한국인 귀화 테스트를 뛰어넘어 공략해야 하는 핵심 포인트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애국가를 몇 절까지 부를 수 있냐는 것보다 한국 문화에 대해서 얼마나 아느냐도 중요할 것이다.

영국에서도 영국에 정착하려는 외국인들에 대해 얼마나 ‘영국적’인지를 시험하는 ‘크리켓 테스트(Cricket test)’가 있긴 있다. 크리켓 경기가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조금 설명을 드리면, 크리켓은 쉽게 말해서 영국식 야구로 영국, 호주, 인도, 파키스탄 등지에서 인기 있다. 이 ‘크리켓 테스트’는 1990년대 초부터 사용되었던 꽤 오래된 용어인데, 영국에 거주하는, 특히 아시아계 이주민이 영국 팀을 응원하는지 아니면 태어난 국가의 팀을 응원하는지에 따라 얼마나 영국적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필자도 FC서울을 응원하는 축구 광팬이기는 하지만, FC서울이 영국의 셰필드 축구팀과 경기를 한다면, 누구를 응원하게 될지 아직도 갈등이 많다. 각종 국가대표 경기를 보면서 한국을 응원하기도 하지만 마음은 아직까지 잉글랜드에 걸려 있다. 재미로 아들한테 잉글랜드랑 한국이랑 붙으면 누구를 응원하겠냐고 물으니 크게 상관없지만 종목에 따라 대회에서 더 멀리 갈 수 있는 팀을 응원할 것 같단다. 그래서 축구는 잉글랜드, 양궁이나 쇼트트랙은 한국 등.

인공지능의 ‘튜링 테스트’를 생각하다가 ‘한국 사람 테스트’를 거쳐 이제 가장 마지막 질문까지 오게 됐다. ‘한국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피상적으로 사람들은, 매운 김치를 잘 먹어야 한국적 사람이고, 한국어를 모국어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한국적 사람이고, 친엄마 친아빠가 한국 사람이면 한국적인 사람이라고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김치를 잘 못 먹는 한국적인 사람도 있고,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한국적인 사람도 있고, 한국어를 모국어처럼 말해도 과음 후 얼큰한 찌개보다는 피자가 더 당기는 비한국적인 사람도 있고, 친엄마 친아빠가 한국 사람이어도 한국 땅 한 번 밟아 보지 않은 전혀 한국적이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리고 한국인 귀화 테스트에 불합격할 한국적인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 생활 17년 차, 상황에 따라 한국어 사용이 영어보다 편하고 해장 음식으로 파전이 피자보다 더 당기는, 그래도 꽤 한국적인 외국인인 내가 여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어디까지 해야 ‘한국 사람 테스트’를 완벽히 패스할 수 있게 될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여기저기 나를 아시는 분들이 가끔이나마 나에게 한국 사람 다 됐다고 칭찬을 해주시는 것에 지금은 만족하려고 한다.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