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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 전투’ 국군 유해, 北-美 거쳐 72년만에 가족 품으로

입력 | 2022-07-15 13:16:00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이 작년 11월 26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광장에서 열린 제6회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행사에 참석해 전사자 명비에 묵념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


6·25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국군 유해가 북한에서 미국을 거쳐 72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이번 신원 확인으로 2000년 4월 유해 발굴이 시작된 이래 신원이 확인된 6·25전쟁 전사자는 193명으로 늘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2020년 미 국방부 전쟁포로 실종자확인국(DPAA)을 거쳐 국내로 봉환된 6·25전쟁 전사자 신원이 고 박진호 일병으로 확인됐다고 15일 밝혔다. 박 일병 유해는 북한 지역에서 발굴된 뒤 1990~1994년에 DPAA로 인계됐다. 국유단과 DPAA는 공동으로 신원 확인을 진행하다 신원이 확인되진 않았지만 국군 전사자로 추정한 뒤 국내로 봉환했다. 북한과 DPAA 하와이지부를 거쳐 고인의 유해는 1만5470㎞에 이르는 긴 여정 끝에 고향 땅을 밟게된 것.

고인의 신원 확인은 그의 남동생이 2020년 지역 농·축협에서 업무를 보던 중 그가 전사자 유족임을 알게 된 직원의 권유로 유전자(DNA) 시료 채취를 신청하면서 이뤄졌다. 국유단은 동두천시 보건소를 통해 채취한 유족의 DNA 시료를 분석해 가족관계일 가능성이 높은 유해를 특정했고 추가 검사를 거쳐 지난달 형제 관계임을 확인했다.

1928년 출생한 고인은 6·25전쟁이 발발한 뒤 1950년 8월 16일에 부산에서 입대했다. 일본 징용 경험으로 인해 일본어와 영어가 가능했던 고인은 일본으로 건너가 군사교육을 받은 후 미7사단 31연대 카투사(KATUSA·미군에 배속된 한국군)로 배치됐다.

미7사단 소속으로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고 이후 부산항을 거쳐 북한 이원항에 상륙하는 원산상륙작전에 성공한 뒤 함경남도 장진읍에서 벌어진 장진호 전투(1950년 11월 27일~12월 11일)에서 산화했다. 북진하던 미군과 중공군이 맞닥뜨린 장진호 전투는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꼽힌다.

고인의 남동생 박진우 씨는 유해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집안을 위해 희생한 형님이 북한에서 돌아가셨다니 억장이 무너지지만 형님을 찾았다니 감개무량하고 형님을 그리워하셨던 부모님 옆에 하루라도 빨리 함께 고이 안장해 한을 풀어드리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19일 오후 3시 경기 동두천시 국민체육센터에서 지역 주민과 자치단체, 군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개최한다. 국유단은 “이번 신원확인은 6·25전쟁 전사자 유족이 주변의 권유로 지역 보건소를 통해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했기에 가능했다”며 시료 채취에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친·외가 8촌 이내 가족 중 6·25전쟁에 참전했으나 돌아오지 못한 경우가 있다면 가까운 보건소나 군부대, 군 병원, 보훈병원 등을 방문해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할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하다면 국유단 대표번호(1577-5625)로 문의하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