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닐 올리버 지음·이진옥 옮김/380쪽·1만8800원
스코틀랜드 오크니 제도에 있는 신석기시대 마을 ‘스카라 브레’는 기원전 3100년부터 약 600년간 옛 인류가 머문 고대의 집이다. 현존하는 8채의 집 중 한 곳에서는 집 내부에 가족의 시신을 매장한 흔적이 발견됐다. 저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곁에 둘 수 있는 것이 집이 갖는 의미 중 하나라고 말한다. 윌북 제공
인류가 창조해낸 첫 번째 발명품은 뭘까. 영국 고고학자인 저자는 그건 ‘길’이라고 단언한다.
잉글랜드 북서부 산악지대에 있는 랭데일 바위에는 날카로운 돌로 새겨진 암각화가 있다. 약 5000년 전 신석기인들이 새겨 놓은 그림은 고대 채석장으로 이어지는 오래된 길을 안내하는 표지였다. 깎아지른 협곡에 자리한 채석장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을 터. 먼저 그 길을 걸어본 이들은 뒤에 올 누군가를 위해 바위마다 길을 새겼다. 암각화가 존재하기 전에는 그보다 원시적인 길도 있었다. 앞서 간 이들의 발자국이다.
제아무리 현대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일지라도 인간의 본성은 수만 년 전 인류의 습성과 다르지 않다고 보는 저자는 옛 인류에게 묻는다. 어째서 무리 지어 살아가며, 안락한 집을 짓고, 또 낯선 이방인을 기꺼이 받아들여 함께 살아가는지. 수만 년 전 무덤에 남겨진 유골과 발자국을 쫓아가 보면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길이 열리리라 믿으며.
옛 인류에게서 낯선 이방인과 교류할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 2002년 루마니아의 동굴 ‘페슈테라 쿠 오아세’에서 약 3만8000년 전 인간의 뼈가 발굴됐다. 유럽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현생 인류의 유전자에는 놀랍게도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의 유전자가 섞여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호모사피엔스는 유럽 대륙에 도달한 뒤 오래전부터 그곳에 살아가던 네안데르탈인과 교류했다. 오래전부터 고고학계는 인류의 피부색과 생김새가 이토록 다양한 이유를 연구해 왔는데,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이방인을 배척하지 않고 교류했던 현생 인류의 용기가 현대인의 다양성을 만든 것이다.
책에는 현생 인류에게서 배울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생존법도 나온다. 바로 ‘공존’이다. 1950년대 이라크 북부 샤니다르 동굴에서 신체장애를 지닌 사람의 뼈가 발굴됐다. 팔꿈치 아래가 잘려나간 데다 관절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유골은 무리에서 40대까지 살아남았다. 이 정도면 그 시대에서 장수한 셈. 그의 무덤 주변에는 불을 피운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이 때문에 인류학자들은 그가 ‘불지기’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옛 인류는 다른 이만큼 제 몫을 하기 힘든 그를 내쫓기보다 그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준 게 아닐까. 옛 인류가 남긴 공존의 흔적을 보며 저자는 ‘태초에 사랑이 그곳에 있었다’고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각박한 현생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사랑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필요했다. 어쩌면 사랑은 인류의 최초 발명품은 아닐지언정 최고의 발명품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