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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뒷날개]구분짓는 언어 너머 본래적 삶을 말하기

입력 | 2022-07-16 03:00:00

◇우리의 사이와 차이/얀 그루에 지음·손화수 옮김/232쪽·1만8000원·아르떼




얀 그루에의 ‘우리의 사이와 차이’를 읽었다. 이 책엔 장애를 지닌 언어학자의 성찰이 담겼다. 해외에선 자전적 에세이의 새로운 지평을 연 논픽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노르웨이 논픽션 부문으로는 최초로 북유럽이사회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출판계에서 장애에 관한 책이 주목받고, 장애인 이동권 보장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장애를 다룬 ‘최고의 논픽션’이란 어떨까 궁금했다.

저자는 세 살 때 선천성 근육질환인 척수 근육 위축증을 진단받았다. 근육이 소실되면서 성인이 되면 두 발로 걷지 못하고 오래 살지 못한다는 질환이다. 그런데 저자는 20대의 어느 날 진단이 틀렸다는 소식을 통보받는다. 2018년 서른일곱 살에 그는 살아서 이 책을 출간했다. 열한 번째 저서다.

어릴 때부터 알았던 사람들은 모두 그가 살아 있다는 데 놀란다. 저자는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본다. 속옷 차림으로 병원에서 진단을 받던 어린이 시절, 희귀한 병을 앓는 아이들의 여름캠프에 가서 난생처음 신체적 우월감을 느꼈던 중학생 시절, 유학 간 암스테르담에서 휠체어로 접근할 수 없는 식당을 바라보던 대학 시절까지.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저자는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를 다녔다. 오슬로대 언어학 교수가 되고 러시아로 미국으로 여행을 다니고, 결혼하고 아이까지 있으니 만족할 만한 삶을 살아간 셈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넓은 도로, 향기로운 자연을 누리면서 낡은 휠체어를 끄는 노숙자들을 본다. 전동 휠체어에서 혼자 일어날 수 있는 자신과 달리 소아마비 환자로 평생 호흡 보조 장치에 의존했던 다른 이의 책을 읽는다.

언어학자인 저자의 특별함은 도덕적인 언어와 거리를 둔다는 점이다. ‘저것은 나쁘다, 이것은 바람직하다, 그들은 틀렸다, 나는 옳다’고 쓰지 않는다. 장애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들이 일거수일투족의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고 도덕적으로 압박할 때 그에 저항할 언어를 찾는다. 장애인활동지원사를 소개하는 ‘누구누구의 팔과 다리’라는 표현과 장애인의 첫 성경험을 치른 사람을 ‘섹스 대리인’으로 부르는 건 한 사람을 ‘대체물’로 취급한 언어이기에 저항한다. 모든 사람은 “대체적 삶이 아닌 바로 그 자체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옳다, 그르다 대신 ‘사이와 차이’에 집중하면 장애냐 특권이냐를 따지는 일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개인성을 이해할 수 있다. 섹스 대리인이라는 개념에 거리를 두면서도 친밀함에서 소외되었던 한 남자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비장애인이라서, 남자라서, 교수라서’ 솔직한 글을 못 쓴다고 여기는 저자들과 읽고 싶은 책이다.



신새벽 민음사 편집부 인문사회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