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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몰입 금지”라면서도 MBTI에 빠진 한국[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입력 | 2022-07-17 08:30:00

MZ세대 놀이 문화이자 대중문화로
한국, 구글트렌드 ‘MBTI’ 검색 세계 1위
코로나19 시대, 자기표현 양식으로 자리매김
성격별 궁합, 각종 순위 등 ‘밈’ 확대 재생산
정식 검사와 무관한 무료 온라인 검사 난립
“오·남용 경계… 인간관계 갈등 조정 도구 돼야”






정신 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너 자신을 알라.”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모두가 실천하려는 듯 한국에서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성격유형 검사에 대한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MZ세대를 중심으로 MBTI의 16개 성격 유형으로 대화할 줄 모르면 ‘아싸(아웃사이더)’가 돼버리는 소재가 됐다.

국가별 구글 트렌드 키워드 검색을 살펴보면 한국의 MBTI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 수 있다. 한국은 2018년부터 MBTI를 많이 검색한 국가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 1년만 봐도 1위인 한국의 검색량을 100으로 보면 다음은 이란(14), 홍콩(14), 싱가포르(13), 브라질(13) 순이다. 한국이 압도적 1위인 것이다. 각 성격 유형을 ‘엔프피(ENFP)’ ‘잇프제(ISFJ)’ 등 우리말로 표기하는 ‘한국화 현상’도 나타났다. 100년 전 지구 반대편에서 시작된 MBTI는 왜 지금 한국에서 ‘인싸템(인사이더+아이템)’이 된 걸까.


●약 100년 전 태동… 한국에는 32년 전 상륙

MBTI를 개발한 딸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왼쪽)와 어머니 캐서린 쿡 브릭스. 마이어스&브릭스재단 제공



MBTI는 1920년대 미국의 모녀 캐서린 쿡 브릭스와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로부터 태동했다. 어머니 브릭스가 성격 유형 분류 작업을 시작했고, 딸 마이어스가 1944년 검사 문항을 체계화했다. 한국에는 1990년 김정택 신부가 선보였다.

MBTI는 스위스 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의 ‘심리유형론’을 이론적 배경으로 한다. 융은 1921년 발표한 ‘심리 유형(Psychological Types)’에서 인간의 성격이 △외향(E) vs 내향(I) △감각(S) vs 직관(N) △사고(T) vs 감정(F) 등 6가지 차원으로 나뉜다고 봤다. 마이어스는 융의 6가지 지표에 △판단(J) vs 인식(P) 지표를 더해 MBTI 문항을 만들었다. 정식 검사는 93개 문항으로 이뤄져있고, 각 대극(對極)에 놓인 두 성격 유형 중 더 가까운 곳에 해당하는 알파벳 4개의 조합으로 검사 결과가 나온다.


그래픽=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외향형(E·Extraversion)과 내향형(I·Introversion)은 주의의 초점이나 에너지의 방향이 외부와 내면 가운데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갈린다. 감각형(S·Sensing)과 직관형(N·iNtuition)은 정보를 수집할 때 보고 들은 구체적 사실에 기반 하는지, 추상적 연관성을 보며 큰 그림을 이해하는데 초점을 두는지에 따라 다르다. 사고형(T·Thinking)과 감정형(F·Feeling)은 의사결정을 내릴 때 논리적 절차를 따지는지,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는지에 따라 갈린다. 판단형(J·Judging)과 인식형(P·Perceiving)은 사안에 대해 질서정연하며 상황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지, 유연하고 즉흥적으로 대처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비전문가 손에 탄생한 MBTI를 둘러싼 논란들

MBTI는 심리학, 정신의학 전문가가 아닌 이들에 의해 고안됐기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이 뒤따랐다. 브릭스는 미시간농업대학을 나와 가정주부로 살았고, 마이어스는 스워스모어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마이어스는 소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살인’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브릭스는 마이어스가 어렸을 때 홈 스쿨링으로 딸을 교육하면서 성격 유형에 따른 교육법에 관심을 가졌다. 융의 심리유형론이 발표된 이후 브릭스는 본격적으로 성격 유형 분류 작업을 했고, 마이어스가 이어 받아 검사 문항을 만들었다.

MBTI는 산업화 시대가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들도 노동시장에 뛰어들면서 이들을 빠르게 분류해 직무에 배치해야 하는 필요가 생겨났다. 정부 기관, 군 등에서도 MBTI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MBTI는 “지나치게 이분법이다” “성격이 16가지로 나뉜다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따랐다. MBTI 개발 과정을 비판적으로 들여다 본 책 ‘성격을 팝니다’의 저자 메르베 엠레는 “각자의 개성을 뭉개 버리고 사전에 결정된 몇몇 유형으로 인간의 행동을 수평화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봉쇄해 버린다”고 비판했다. 비판을 의식한미국의 마이어스&브릭스재단에서는 윤리 가이드라인에 “구직자 선별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비윤리적이고 불법”이라며 “검사자가 성격 유형 정보만으로 특정 진로, 인간관계 등을 조언하면 안 된다”고 명시했다.

●‘적당히’ 복잡한 MZ세대의 놀이 문화로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이고 명료한 해석을 제공하는 MBTI는 가장 대중적인 심리검사 도구가 됐다. 한국의 MBTI 주 소비층인 MZ세대는 이런 특징을 활용해 일종의 놀이 문화를 만들어냈다. 알파벳 4개로 ‘나’와 ‘너’를 한 마디로 규정해주는 명료함에 매료된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관계성에 대해 해석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더해지면서 ‘적당히’ 복잡하고 응용이 무궁무진한 놀이 콘텐츠가 됐다.


MZ세대들에게 MBTI 성격 유형이란 자신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일종의 자기 소개이자 명함이 됐다. 각 성격 유형을 새긴 캐릭터 티셔츠를 판매하는 곳도 생겨났다. ‘MBTI의 모든 것’ 온라인 스토어 화면 캡처



보통의 심리검사는 비밀 보장이 원칙이지만, MZ세대에게 성격 유형 4자리는 일종의 명함이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 프로필에 자신의 MBTI 유형을 거리낌 없이 공개한다. 연인이나 친구 사이 MBTI 궁합을 맞춰 보는 것은 일상이다. 특정 성향끼리 모여 교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도 활발하다. 성격 유형이 새겨진 인형, 스티커 등 굿즈를 사는데 기꺼이 지갑을 연다. 대학생 이소연 씨(22)는 “MBTI는 공사 구분 없이 생활하는 어느 순간에나 등장한다”며 “친구, 애인 궁합 보는 건 기본이고,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발표를 시키면 ‘저는 I성향이라 못 하겠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다”고 했다.

포털 사이트나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서 ‘MBTI’를 검색하면 일반인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다양한 밈들이 검색된다. 성격 유형별 ‘평균 수입 순위’ ‘눈 높은 순위’ ‘돌+아이 순위’ 등 다양하다. 인스타그램, 네이버 블로그 화면 캡처



이들은 MBTI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할 뿐 아니라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을 만들어 자체적으로 생산·유통한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는 성격 유형별 ‘연봉 순위’ ‘반하는 이성 분위기’ ‘애인과 싸웠을 때 반응’ ‘놀림 많이 받는 순위’ 등 일반인들이 만든 콘텐츠가 상당하다. 이런 온라인 게시물에는 “소름 돋게 잘 맞는다” “이래서 MBTI를 안 믿을 수 없다”는 댓글이 수십, 수백 개씩 달린다.

MBTI가 MZ세대에게 인기를 끌다 보니 과도한 마케팅 소재가 되기도 한다. 자동차, 의류, 식품 기업 등이 ‘성격 유형별 추천 상품’을 판다. 하지만 대부분이 구체적 연구 결과가 뒷받침 되지 않는 것들이다. 최근에는 성격 유형별 선호하는 이성 외모 취향을 매칭해 보여주는 소개팅 앱도 등장했다.

얼마 전에는 일부 기업이 채용 과정에서 특정 MBTI 성격 유형은 지원하지 말라거나, 혹은 특정 유형을 선호한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공기관 채용 공고에서 조차 ‘외향형(E)을 선호한다’는 글이 버젓이 올라온다. 7년차 취업 컨설턴트인 이아라 씨(35)는 “취업준비생들이 특정 성격 유형이 아닌데, 해당 기관에 지원해도 되는지 묻곤 한다”며 “예민한 채용 문제에서 MBTI로 사람을 선별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갈등 관계 조정에 사용되는 것이 바람직”

7일 서울 강서구 한국MBTI연구소에서 만난 김재형 한국MBTI연구소 연구부장은 “MBTI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목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무조건 신봉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태도”라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MBTI를 통해 상품 취향을 맞추거나, 선호하는 이성 외모를 구분할 수 있다는 학술적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7일 서울 강서구 한국MBTI연구소에서 만난 김재형 한국MBTI연구소 연구부장은 온라인에 떠도는 각종 MBTI 관련 콘텐츠에 대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17년째 MBTI를 연구하고 있는 그는 검사 타당도와 관계없는 영역에까지 MBTI가 오·남용되고 있는 현실을 우려했다. 김 부장은 “비전문가들이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식으로 만든 콘텐츠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심지어 온라인에서 MBTI 검사로 알려진 무료 간이검사는 사실 정식 검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김 부장은 “가장 유명한 무료 검사인 ‘16 Personalities’는 정식 MBTI 검사 문항과 같은 문항이 전혀 없고, 성격 유형 지표도 알파벳만 동일할 뿐 다른 단어를 쓴다”며 “일반인들이 간이검사 문항을 임의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신뢰도와 타당도가 검증되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이런 아류 검사의 난립으로 정식 검사 시행 수가 MBTI 유행 이전과 비교해 크게 늘지 않은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대부분이 온라인 간이검사 결과를 굳게 믿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MBTI가 유행을 지나 건강한 문화로 자리 잡으려면 자정 작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부장은 “MZ세대들은 학교에서 청소년용 MBTI 검사를 이미 경험해본 세대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교류가 막히면서 쉽고 빠르게 상호작용하고 상대의 정보를 파악하는 수단으로 MBTI가 크게 주목받게 된 것”이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확한 정보들은 도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MBTI는 상대를 낙인찍는 목적이 아니라 가정이나 조직에서 갈등 관계 해소 도구로 사용될 때 빛을 발할 것”이라며 “성격 유형이 절대 불변하는 것으로 믿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성격도 나이와 환경 따라 변한다?

지난해 학술지 ‘심리유형과 인간발달’에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이 실렸다. ‘한국인 대표 표본의 MBTI 분포 연구’로 2012년부터 2020년까지 MBTI 정식 검사를 한 만 16~59세 한국인의 성격유형 분포를 분석한 자료다. 실제 인구 비례를 고려해 1만9070명을 표본 추출했다. 현재까지 나온 한국인 관련 MBTI 분포 자료 중 가장 정확한 자료라고 볼 수 있다.


그래픽=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흥미로운 점은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각 성격 유형 지표에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성격 유형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생애 발달 주기에 따라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면서 변해간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감각(S), 직관(N) 지표는 만 20세 전에는 5대 5 수준이었지만, 이후에는 7 대 3까지 벌어졌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직관(N) 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더 신뢰하는 감각(s) 유형 쪽으로 기운다는 것이다. 판단(J), 인식(P) 지표도 만 16세에는 3대 7 비율이었지만, 만 59세에는 7대 3으로 역전됐다. 성인기에 조직 생활을 거치면서 점차 예측가능하고 질서정연한 판단(J) 유형을 추구하게 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외향(E), 내향(I) 지표의 경우 1990년 표준화 데이터와 비교해 볼 때 큰 차이를 보였다. 당시에는 30~50대 연령에서 I 비율이 66%에 달했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두 지표의 비율이 5대 5로 비슷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성인기 대외 활동의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선호 지표도 바뀐 것으로 보인다.

김 부장은 “융은 성격을 씨앗으로 봤다. 성격은 생애 발달 주기, 환경 등과 상호작용하며 뭔가가 되어가는 과정이지 처음부터 완전체가 아니다”며 “MBTI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 가운데 하나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