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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보수당의 대변신[횡설수설/이정은]

입력 | 2022-07-18 03:00:00


“변화는 거대하고 속도는 놀랍게 빠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후임을 뽑기 위한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신진 후보들의 돌풍이 거세다. ‘명문대 출신의 부유한 백인 남성’이라는 기존 보수당 리더의 틀을 깨는 파격의 드라마가 한창이다. 2차 경선에 올라간 6명 중 3명이 인도와 아프리카계 이민 가정 출신의 비(非)백인이었고, 여성도 절반이다. 존슨 총리가 당선됐던 3년 전만 해도 후보 10명 중 단 1명만이 비백인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후보 중 한 명인 케미 베이드노크 전 평등 담당 부장관은 나이지리아인 부모와 함께 나이지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흑인 여성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16세 때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어려운 시절도 있었다. 경선 1위를 달리고 있는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은 케냐와 탄자니아 출생의 인도인 부모를 둔 이민 2세대다. 1차 경선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초기 8명의 후보 명단에 들어있던 나딤 자하위 재무장관은 이라크 쿠르드족 난민 출신이다.

▷영국의 인구 구성은 백인이 전체의 87%에 이르고, 흑인과 아시아계를 합쳐도 10%가 되지 않는다. 보수당 당원으로만 따지면 백인 비중이 95%까지 늘어난다. 당 대표 후보자의 구성이 이를 넘어서는 것을 놓고 “영국의 탈인종주의 신호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후보들은 인종에 근거한 정체성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다. 이민자 출신임에도 정부의 강경한 이민자 정책을 지지하고 있고, 불법 이민자를 르완다로 보내는 방안에도 찬성표를 던졌다. “백인보다도 더 하얗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출신이 곧바로 정책적 다양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후보들의 다양성 뿌리는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2005년 당 대표에 선출된 지 일주일 만에 “보수당의 얼굴을 바꾸겠다”고 한 선언이 시작이었다. 그는 백인 남성 중심의 고루한 당 이미지에서 탈피하겠다며 다양성 확보를 위한 5가지 단계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여성과 흑인, 장애인, 소수인종의 비중을 확 늘린 후보자 명단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보수당의 색채를 바꾸고 있는 이번 경선의 역동성은 20년 가까운 투자의 결과인 셈이다.

▷캐머런 전 총리는 2005년 연설 당시 “정부의 다양성은 정치적 올바름이 아닌 국가 효율성의 문제”라고 했다. “(다양성의) 균형을 갖추지 못하고 어떻게 국가가 오늘날 영국인 전체의 열망을 다 반영할 수 있겠느냐”고 일갈했다. 정부라면 마땅히 각 그룹의 대표성을 인정하고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 툭하면 ‘서오남’ 소리를 듣는 정부가 면밀히 지켜봐야 할 지도자 인선 작업이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