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째 체험 증언해온 가지모토씨
14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에서 원자폭탄 피폭 체험을 들려주고 있는 가지모토 요시코 씨. 히로시마=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전쟁을 모르고, 원자폭탄을 모르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있어요. 약자가 희생될 수밖에 없는 전쟁은 시작 자체를 하면 안 됩니다.”
1945년 8월 6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실전에 쓰인 원자폭탄 피해를 일본 히로시마에서 경험한 피폭자 가지모토 요시코(梶本淑子·91) 씨는 “일본이 핵을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본 여권에) 있다”는 외신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며 손을 내저었다.
가지모토 씨는 2000년부터 22년째 히로시마평화기념관에서 피폭 때 체험을 증언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2019년 11월 히로시마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직접 만났다. 원폭 투하 70주년이던 2015년에는 영국 상하원 의회에 화상(畵像)으로 피폭 체험을 전했다. 14일 일본 포린프레스센터 주최로 히로시마에서 한국을 비롯한 외신 특파원들과 만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일으킨 잔혹했던 전쟁 경험을 생생히 증언했다.
정부와 군부가 국민 입을 틀어막던 기억도 어제 일 같다.
“그때만 해도 치안유지법으로 단속하던 시대입니다. 아버지가 집에서 ‘이 전쟁에서 일본은 질 거야’라고 하니 어머니가 ‘그런 말 잘못하면 큰일 난다. 밖에 나가서 그런 말씀 하지 마시라’고 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전쟁에 반대한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없던 시대였습니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졌을 때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국가총동원령에 따라 당시 가지모토 씨는 비행기 프로펠러 부품 공장에서 일했다.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데 창밖에서 번쩍 하며 하얀 빛이 나자 평소 훈련받은 대로 눈 귀 코를 양손으로 막고 바닥에 엎드렸다.
“지구가 폭발하는 듯한 굉음이 난 뒤 무너진 천장과 벽 아래에서 그대로 기절했습니다. 깨어난 뒤 밖에 나가 보니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어요. 어시장 생선처럼 시체가 길바닥에 늘어져 있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화장터였고 지옥이었어요.”
히로시마=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