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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수백억 먹튀 기업사냥꾼 없게… 부정거래자 주식 매매 막는다

입력 | 2022-07-19 03:00:00

시세조종-부정거래 등 불공정거래… 적발서 처벌까지 시간 너무 걸려
범죄자 금융거래 못막고 재범률 쑥… 9월중 행정제재 도입 방안 마련
상장사 임원 선임 등 제한하기로, 최대 2배 과징금 법안도 추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도움될것”




이모 씨는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악명 높은 ‘기업 사냥꾼’으로 통한다. 대출 등으로 인수자금을 조달해 무자본으로 기업을 인수한 뒤 허위 공시로 주가를 띄우고 지분을 팔아치운 ‘먹튀’ 전력이 화려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2014년부터 2020년까지 무자본 M&A를 비롯해 시세조종, 미공개 정보 이용 등 최소 7건의 주식 불공정거래 사건에 연루됐다. 부당 이익은 수백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 중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을 빼고 확정된 처벌은 800만 원 벌금형에 불과하다.

앞으로 이 씨처럼 자본시장 불공정거래를 한 사람을 겨냥해 금융당국의 제재만으로 주식 등 금융 거래를 차단하고 상장사 임원 선임을 제한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형사 처벌과 별개로 금융당국이 ‘자본시장 범죄와의 전쟁’에 본격 나선 것이다.
○ 금융당국이 주가 조작범 주식 거래 차단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9월 중 이 같은 내용의 행정제재 도입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자본시장법 개정 이전이라도 시행령이나 규정 변경 등을 통해 자본시장 범죄에 대한 행정제재를 우선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증권 범죄 대응 강화는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자 시절 공약이기도 하다.

행정제재가 도입되면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 의결만으로 시세조종이나 미공개 정보 이용, 부정거래 등을 저지른 사람을 대상으로 주식, 파생상품 등의 거래를 막을 수 있다. 또 불공정거래자가 5년 안팎의 기간 동안 상장사의 대표이사, 등기이사 등 임원에 선임되는 것도 제한할 방침이다.

당국은 행정제재 도입과 더불어 불공정거래로 얻은 부당이득에 대해 최대 2배의 과징금을 물릴 수 있도록 한 자본시장법 개정안 통과도 조속히 추진할 계획이다.

당국이 행정제재 도입에 나선 것은 불공정거래 사건을 적발해 형사 처벌을 확정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리는 데다 범죄자들의 금융 거래를 제한할 장치가 없어 재범률이 높다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증선위가 불공정거래로 검찰에 통보한 사건이 기소 처분을 받기까지 평균 393일, 검찰 기소 후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기까지 평균 12.9개월 걸리는 것으로 집계됐다. 또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자본시장법상 불공정거래를 한 307명 가운데 21.5%는 과거 전력이 있는 재범자였다.
○ “행정제재,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도움 될 것”
주요 선진국들은 금융당국의 행정제재를 통해 불공정거래 행위자의 자본시장 참여를 제한하고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자체 조사를 통해 금융 거래 중지는 물론이고 상장사 취업 제한, 민사 제재금 청구 등을 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최대 사기극으로 꼽히는 ‘테라노스 사태’에 대한 제재가 대표적이다.

바이오기업 테라노스는 극소량의 혈액 샘플만으로 수백 개 질병 검사가 가능한 것처럼 속여 거액의 투자를 유치했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에 대한 형사 재판은 사건이 불거진 지 6년 만인 올해 1월 끝났다. 하지만 SEC는 앞서 2018년 홈스에게 50만 달러의 제재금과 향후 10년간 상장사 이사 선임 제한 조치를 내렸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자본시장 규모에 비해 불공정거래에 대한 처벌이 약한 편”이라며 “과징금 부과, 자본시장 참여 제한 등의 행정제재를 조속히 도입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