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초연 ‘카사노바’ 연출가 임지민 유럽 누비며 1000명 만난 카사노바 허구의 인물 메이커 대척점에 세워 새 단장 국립정동극장 세실 개관작
이탈리아 출신 자코모 카사노바(1725∼1798)는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자전적 기록에 따르면 카사노바는 공식적으로 122명의 여성과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영국의 극작가 데이비드 그레이그가 2001년 완성한 희곡에서 카사노바는 무려 1000명의 여성을 만난 걸로 그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허함을 느낀 카사노바는 유럽 전역을 누비며 마지막 운명의 상대를 찾아 헤매는데….
2014년 연극 ‘타이니슈퍼맨션’으로 데뷔한 임지민은 ‘집에 사는 몬스터’(2019년)로 제40회 서울연극제 대상을,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2021년)로 제58회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받으며 연극계가 주목하는 스타 연출가로 부상했다.
연극에는 작가가 창조한 허구의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카사노바(지현준) 때문에 아내와 이별해 복수극을 꾸미는 캐비넷 메이커(정승길), 카사노바의 첫사랑 미세스 테넌트(이영숙)와 그의 비서 마리 루이스(허진). 그리고 메이커가 복수를 위해 고용한 탐정 케이트(이지혜). 그 밖에 카사노바와 데이트한 5명의 여성은 케이트를 연기한 배우 이지혜가 1인다(多)역을 펼친다.
“희곡을 처음 읽었을 때 한 장의 그림이 떠올랐어요. 네모난 액자 안에서 카사노바는 여성과 정사를 나누고, 메이커는 그 액자에 망치질을 하고, 미세스 테넌트가 세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죠. 그 모습을 공간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카사노바와 정반대 성격을 가진 메이커는 존재만으로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선명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대척점에 선 두 사람의 서사를 겹겹이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연극은 진행된다.
“카사노바는 상대에 따라 감각적으로 변화, 교감할 수 있는 인물이고, 메이커는 변하지 않는 자신의 관점으로 상대를 대하는 사람이에요. 섣불리 한쪽 편을 들고 싶진 않았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본 관객이 직접 판단하게 하고 싶었어요.”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