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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반도체 굴기’, ‘반도체 자립’ 등을 앞세워 조성한 막대한 규모의 펀드 운용과정에서 잇따라 비리가 발생하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국 일본 대만 등 반도체 핵심 4개 국가의 이른바 ‘칩(Chip)4 동맹’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사건이어서 중국 내부에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반도체 자립’은커녕 부패만 자립하고 있다”는 자조가 나올 정도다.
18일 중국 텅쉰왕(騰訊網), 메이르징지(每日經濟)신문 등에 따르면 중국공산당 내 최고 반부패 사정 기구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루쥔(路軍·54) 화신투자관리(시노 IC캐피털) 전 총재에 대해 엄중한 법 위반 혐의가 발견돼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중앙기율검사위가 사용하는 ‘엄중 위법 혐의’란 표현은 고위직의 부패 혐의를 일컫는 말이다.
화신투자관리는 중국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규모로 조성한 펀드를 운용하는 회사다.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취임 이후 반도체 산업 육성 계획에 따라 2014년 반도체 스타트업과 연구개발(R&D)에 투자할 1387억 위안(약 27조 원) 규모 펀드를 조성했다. 중국 재정부, 중국개발은행 등 정부 기관과 통신회사인 중국이동 등 국유 기업들이 자금을 댔다. ‘빅펀드’라고도 불리는 이 펀드를 관리·운용할 회사로 2014년 8월 화신투자관리가 설립됐다. 이후 중국은 미국의 중국 압박이 거세지던 2019년 7월 다시 2000억 위안(약 39조 원)을 추가로 조성해 이 금액도 모두 화신투자관리에 맡겼다. 이 회사가 운용하는 자금만 총 66조 원에 이른 셈이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도 이 회사의 가오쑹타오(高松濤·52) 전 부총재가 부패 혐의로 감찰 조사를 받았다. 가오 전 부총재는 2014년 10월~2019년 11월 부총재를 지면서 재직 당시 투자를 집행한 반도체 회사의 내부자 거래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최대 반도체 펀드 운용 회사의 최고위직들이 잇따라 비리에 연루되면서 중국 내에서는 ‘반도체 굴기’를 시작도 해 보기 전에 발목 잡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당국은 미국의 ‘반도체 압박’ 강도가 갈수록 거세지는 상황에서 발생한 이번 부패 사건을 더 엄중하게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