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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이상훈]우려스러운 日 급진적 극우 정당 약진

입력 | 2022-07-20 03:00:00

막말-역사 왜곡 쏟아내는 정당, 세력 키워
우경화 치닫는 日 막을 브레이크는 어디에



이상훈 도쿄 특파원


집권 자민당 압승으로 막을 내린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뒤늦게 주목을 받는 정당이 있다. 참정당(參政黨)이라는 군소 정당이다. 비례대표 투표에서 175만 표를 얻어 1석을 획득해 원외 정당 중 유일하게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선거 기간 매스미디어는 참정당을 거의 다루지 않았지만 인터넷과 거리에서는 달랐다. 유튜브 구독자 20만5000여 명으로 자민당(13만5000여 명)을 훌쩍 앞섰고 유세장에는 수백 명이 모여 환호했다. 일본 우익이 즐겨 쓰는 ‘일본민족혼(大和魂) 부활’을 앞세우며 ‘일본인 자존심을 고양하는 역사교육 실시’ ‘외국인 배척’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코로나19는 음모’ ‘백신은 가짜’ 같은 허무맹랑한 주장도 내놨지만 “이제야 제대로 된 정당이 나타났다”며 열광하는 지지자가 적지 않았다.

오사카 군소 우익 정당이던 일본유신회는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 이어 이번 선거에서도 의석을 늘리며 어엿한 주요 야당으로 자리를 굳혔다. 자민당에 “헌법을 개정할 거면 날짜부터 잡자”고 압박하고 ‘자위대 헌법 명기’를 강하게 내세우며 개헌 세력의 주요 축으로 활동하고 있다.

교도통신 출구조사에서 참정당의 20대 득표율(5.9%)은 100년 역사 일본공산당(4%)을 앞섰다. 일본유신회는 비례대표 8명을 당선시키며 비례만 놓고 보면 자민당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언제나 자민당이 이기는 ‘고인 물 정치’ 같지만 일본 정치사를 돌아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1990년대 신당(新黨) 붐, 2000년대 민주당 정권 교체 같은 변화의 바람은 늘 있었다. 과거 이런 변화의 바람이 정치권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면 최근에는 야당이 지리멸렬해진 틈을 타 급진 정당이 고개를 든다는 차이가 있다.

이런 정당의 약진은 유럽의 급진 정당 인기와 다르지 않다. 장기 경기 침체, 코로나19 방역 피로감, 기성 정당에 대한 실망 등으로 유권자들이 자극적인 구호에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정권 교체를 도모할 변변한 야당이 없는 일본 정치 현실에서 급진 정당은 비논리적이지만 그럴싸한 구호로 유권자를 유혹한다.

이들 급진 정당을 소수 정당으로 무시할 게 아니다. 이들은 드러내놓고 역사 수정주의, 혐한(嫌韓) 현상을 조장하고 있다. 올 4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한일 정책협의단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면담하자 일본유신회는 “외교의 ABC도 모른다”고 비난했다. 지난해 일본유신회 의원이 국회에서 교과서에 “종군위안부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고 하자 일본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교과서에서 종군위안부와 강제 연행 표현의 삭제 및 변경을 결정했다.

과거에는 국회의원 개인이 망언을 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달라졌다. 급진적 극우 정당이 조직적으로 역사 왜곡과 ‘무례한’ 외교를 요구하면 일본 정부는 마지못해 수락하는 형식으로 도발을 정당화한다. 자민당이 외부 눈치를 보느라 못 하는 말들도 거침없이 쏟아낸다. 당장 참정당이 주요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일본유신회가 정권을 잡지는 않겠지만 이들의 주장은 그럴듯한 정치권 목소리로 포장돼 일본 사회 구석구석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헌법 개정, 방위비 배증(倍增)을 추진하는 일본 정치권에서 우경화 가속 페달을 막을 브레이크는 갈수록 사라져 간다. 침략의 역사를 직시하고 겸허히 반성하길 기대하기에는 일본이 너무 멀리 가버린 건 아닐까.

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