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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사고 치겠다”… 양재민의 일본 접수 ‘시즌2’[유재영 기자의 보너스 원샷]

입력 | 2022-07-20 11:50:00



“(이)현중이는 미국에서, 저는 일본에서 ‘사고’ 치겠습니다.”

한국 선수로는 일본프로농구(B리그) 첫 아시아 쿼터 신분 선수로 1부 신슈 브레이브스에서 두 시즌을 보낸 양재민(23·200cm)이 일본 최강 팀에서 특급 도약을 노린다. 전미대학체육협회(NCAA) 1부 데이비슨대학 소속으로 미국프로농구(NBA) 진출을 노리는 이현중(22·202cm)과는 다른 무대에서 한국 남자 농구의 경쟁력을 끌어 올릴 필요 자원으로 인정받았으면 하는 그다.

양재민은 12일 지난 시즌 B리그 우승팀 우츠노미야 브렉스와 2년 계약을 맺었다. 두 시즌 동안 기록만 놓고 보면 평범했다. 2020~2021시즌 38경기에서 경기당 2.7점, 1.6리바운드, 0.3어시스트를 올렸다. 지난 시즌 기록은 43경기에서 3.8점, 2.1리바운드, 0.6어시스트. ‘세컨드 식스맨’급 활약이었지만 두 번째 시즌은 출전 시간이 늘면서 팀 주전들이 쉬거나 공백이 생긴 타이밍에 알찬 활약을 펼쳤다. 3점 슛 성공률도 21.6%에서 35.7%로 나아졌다. 출전 시간에 제약을 받기는 했지만 장신으로 2~4번 포지션을 두루 소화할 수 있는 잠재력과 스타 발전 가능성을 인정 받으며 양적, 질적으로 성장 중인 일본 프로 무대에서 롱런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 B리그 우승 팀이 인정해준 도전 가치

“1부 다른 팀과 계약 마무리 단계에 있었는데 우츠노미야에서 연락이 왔어요. 나중에 계약서 사인하기 전에는 감독이 직접 연락을 해왔어요. 청소년 대표 때 이후, 또 스페인(또레르도네스 18세 이하 팀)에서 뛸 때도 저를 지켜봤다고 하더라고요.”

우승팀의 솔깃한 제안을 받긴 했지만 양재민에게는 절대적으로 뛰는 시간 보장이 절실했다. 지난 시즌 출전 시간은 경기당 13분 30초. 전 시즌에 비해 4분여 정도 늘긴 했지만 모자랐다. 우츠노미야는 일본 국가대표 에이스인 히에지마 마코토를 축으로 전 소속팀인 신슈보다 선수층이 훨씬 두텁다. 일본 최초 NBA 리거인 베테랑 타부세 유타(42)가 자유계약선수로 풀렸지만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도 좋아 양재민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넓지 않다.

양재민은 “그래서 ‘내 가치를 낮게 잡지 말자’라는 생각에 연봉 금액을 높였더니 액수가 점점 오르더라. 다른 세부 조건도 내 요구대로 수정해 맞춰줬다”고 설명했다. 우츠노미야는 신슈 시절 보수보다 6배 가까이 올린 금액으로 양재민을 적극 붙잡았다.

‘플레잉 타임’에 대해서도 재차 확실한 요구를 팀에 전달했고, 출전 시간을 보장할 여지가 있다는 팀 사정도 분명하게 들었다. 양재민은 “‘많이 출전을 해서 한국 국가대표가 되는 게 목표’라고 했더니 감독이 ‘현재 라인업이 시즌 60경기를 치르려면 상당히 빡빡하다. 로테이션 범위를 넓히려는데 내외곽을 모두 소화해줄 젊은 선수가 필요하다’고 하더라. 이 말을 듣고 이 팀에서는 ‘겉돌지는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 혹독하게 일본 스타일 ‘팀 농구’ 배워 … “국가대표는 평생 꿈, 이어 NBA 서머리그에서 단 1경기라도 뛰고 싶다”

우승팀 적응에 걸림돌은 없다. 거의 모든 일본 팀이 구사하는 농구 스타일이 몸에 배어 어떠한 역할을 받더라도 자신있다고 했다. 유럽과 미국에서 힘이 좋은 장신 선수들을 두고 1대1 능력을 키웠던 양재민은 일본에서 혹독하게 ‘팀 농구’를 배웠다.

“일본 팀은 거의 시스템 분업 농구를 해요. 상황에 따라 각자 역할이 정해져 있어요. 10번 공격을 하면 한국에서는 포인트 가드 중심으로 자유롭게 2대2 픽앤롤 공격 등을 하지만 여긴 8~9번이 패턴을 활용해요. 공 반대편 공간을 움직이거나 패스를 받을 때도, 스크린을 갈 때도 무조건 정해진 타이밍에 해야 돼요. 조금이라도 안 맞으면 난리가 나요. 키가 작은 수비가 붙으면 무조건 그 쪽으로 1대1 포스트업 플레이를 진행해야 되고요. 일본에 오고 한 시즌 동안 적응이 안 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경기나 연습을 할 때도 노트북을 펴서 패턴을 그려보고 외우고, 전력 분석원한테도 영상 편집한 것을 보여달라고 해서 공부를 했죠.”

과거 ‘교과서 농구’를 한다고 우리가 한 수 아래로 봤던 일본 농구는 2020 도쿄올림픽을 기점으로 ‘탈(脫) 아시아’를 위한 10년 발전 계획을 체계적으로 실행에 옮기고 있다. 남녀 국가대표, B리그 경쟁력 향상, 연령대별 유망주 발굴을 위한 다양한 마케팅과 지원 사업, 후원사 유치가 수치로 객관화된 최종 목표에 맞춰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

양재민은 “이 환경을 보면서 농구 외적으로도 보고 배우는 것도 많다. 농구 행정이 눈에 들어오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신슈 팀에 있을 때 단장이 자전거를 타고 지역 팬과 후원자들을 찾아가 만나더라.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팀의 마케팅 활동을 돕는다. 평생 해야할 내 농구가 여러 모로 풍성해지는 것 같다”고 뿌듯해 했다.

양재민은 경복고 시절 스페인으로 떠나 잠시 유럽 농구를 경험했다. 연세대 1학년 때도 중퇴를 하고 미국 니오쇼 카운티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전미전문대학협회(NJCAA) 리그를 뛰며 NCAA소속 대학 편입을 노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의 전 세계적 확산으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학교의 학사 계획이 중단되면서 애매한 처지가 됐지만 일본에서 가야할 길과 목표가 선명해졌다.

당장 국내 팬들에게 존재감을 알릴 기회가 왔다. 우츠노미야는 새로 출범한 2022~2023시즌 동아시아 슈퍼리그(EASL) B조에서 지난 시즌 KBL(한국농구연맹) 챔피언 SK와 10월과 11월 한국과 일본에서 2차례 맞붙는다. SK가 자랑하는 국가대표 김선형-최준용 콤비와 코트에서 맞대결하게 된 양재민은 “이런 날이 올까 싶었다. 전희철 감독에게 ‘내가 이렇게 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SK 전이 또 한 번의 인생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부상 회복 중인 이현중과 자주 전화 통화를 나누면서 ‘마이 웨이’에 대한 자부심이 더 커졌다는 양재민. 한국 선수로는 유일한 해외팀 소속으로 국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목표에 현실적인 희망을 한 가지 더해 마음에 품고 다음 주 일본으로 떠난다.

“국가대표가 된다면 NBA 서머리그에서 딱 1경기 뛰고 싶어요. 그러면 지금까지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저 스스로에게 고맙다고 해주겠습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