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스타트업 창업자 3명 가운데 1명은 중간 수준 이상의 우울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의 가장 큰 요인은 자금 압박 및 투자유치였다.
20일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와 분당서울대병원이 발간한 ‘스타트업 창업자 정신건강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창업가의 정신건강 상태는 모든 지표에서 낙제점이었고, 일반 성인 대비 우울, 불안, 자살의 유병률이 높았다. 국내에서 처음 발간된 이번 보고서는 국내 스타트업 창업자 271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간 수준 이상의 우울을 겪는 창업자는 32.5%(88명)으로 나타나 전국 성인 평균(18.1%)보다 높았다. 불안의 비율도 20.3%(55명)으로 전국 성인 평균(8%)을 훨씬 웃돌았다. 또 창업자 10명 중 2명은 자살 위험성 고위험군에 속해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창업자 가운데선 여성 창업자가 남성 창업자에 비해 자살위험성과 스트레스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창업자의 자살위험성은 34.1%, 중증도 이상의 스트레스 비율은 68.2%인 반면 남성창업자는 각각 18.5%, 57%였다. 또 여성창업자는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역기능적 대처’를 남성창업자에 비해 더 많이 사용했다. 역기능적 대처란 스트레스와 관련 없는 행동을 해 스트레스를 회피하는 것을 뜻한다.
보고서는 “역기능적 대처를 자주 사용하게 되면 문제성 음주 증가 등의 문제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며 “여성 창업자를 대상으로 스트레스 대처 자원 개발을 위한 심리 교육 및 프로그램 실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창업가의 정신건강 상태는 적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정작 창업자들은 정신건강과 관련된 전문적 도움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었다. 정신건강에 전문적 도움을 받을 의향이 없거나, 의향이 있더라도 현재 도움을 받고 있지 않는 254명에게 이유를 조사한 결과 제일 큰 이유로 ‘정신건강 문제로 어려움이 있지만, 도움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46.9%)가 꼽혔다.
이어 △치료 시간을 내기 어렵다(39.8%) △높은 비용(33.9%) △어디서 도움을 구할 수 있는지 모름(13.8%) 순으로 나타났다. ‘나약한 사람으로 비춰질까 염려된다’(10.2%)거나 ‘사회나 직장에서 받을 불이익’(5.1%) 등 낙인 효과를 우려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연구의 책임자인 김정현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정신건강은 개인의 삶 뿐만 아니라 기업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다”며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자신의 정신 건강 상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언제든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심리 교육 기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