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뉴시스
1000조 원에 육박하는 자금을 운용하는 글로벌 펀드 매니저 80%가 미국 최대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 설문조사에서 경기 전망을 어둡게 본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투자심리가 바닥을 쳐 이들의 주식 보유량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이후 최저지로 나타났다고 미 포춘지가 설문조사를 근거로 보도했다. 미국 물가상승률이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9%를 돌파했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럽 에너지 위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점이 원인으로 꼽혔다.
달러 가치가 초강세를 보이는 ‘슈퍼 달러’ 현상으로 미국 물가가 다소 안정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각국 통화 가치 급락으로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의 인플레이션이 장기화 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 “투자자들 주식보유량 금융위기 이후 최저”
미 포춘지는 19일(현지 시간) 뱅크오브아메리카가 글로벌 펀드매니저 25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약 80%가 내년 경제성장률이 악화될 것이라고 응답했다고 보도했다. 1995년 이 은행이 설문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특히 투자자들은 위험 자산에서 발을 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식 등 비교적 위험한 자산 비중을 줄였다고 답한 비율이 58%로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높았다고 포춘지는 전했다. 이들이 주식에서 돈을 빼 안전자산인 현금으로 이동하는 경향도 강해졌다. 이 투자자들의 현금보유량이 6%를 넘어 2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 “슈퍼 달러 탓 각국 원유 값 안 내려간다”
한때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했던 국제유가가 100달러 안팎에 안착하며 인플레이션이 다소 꺾이는 징후가 감지되고 있지만 ‘슈퍼 달러’로 인한 달러 대비 환율 상승효과 때문에 미국 외 국가들의 인플레이션이 더욱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에 비싼 원자재는 나머지 국가에게 더욱 비싸진다”며 “달러 가치 상승이 미국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는데 도움을 주는 반면 나머지 국가 물가상승률에는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본보가 지난해 말 대비 이달 19일 기준 서부텍사스산원유(WTI)의 최근 월물 가격 상승률을 비교한 결과 유가가 달러 기준으로 38% 오를 때, 원화 기준으로 52% 올랐다. 엔화로 보면 66% 상승했다. WSJ는 영국 북해산 브렌트유가 달러 기준으로 59% 올랐을 때 위안화로는 66%, 엔화로는 88%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수입 원자재 의존도가 큰 일부 국가는 수요를 줄이려 애쓰고 있다. WSJ는 “달러 가치 상승으로 커피 수입가격이 비싸지자 아르헨티나는 커피 수입을 확 줄여 커피 부족 사태가 우려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외 국가들이 수입물가 상승으로 수요를 줄이면 경기 침체를 앞당겨 더욱 달러 가치를 높이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 존 투렉 JST 어드바이저 창립자는 블룸버그에 “달러 가치가 상승하면 글로벌 투자가 위축되고, 성장이 둔화돼 다시 안전자산인 달러 강세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