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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한여름 밤의 산책’엔 음악-역사-빛이 흐른다

입력 | 2022-07-21 03:00:00

어제부터 청와대 야간개방
퓨전 국악 연주-해설사 동행… 녹지원 ‘반딧불 조명쇼’가 백미
내달 1일까지 1200명 선정 마감
“가을 야간탐방 진행도 검토”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 앞에서 19일 ‘청와대 한여름 밤의 산책’에 참가한 이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대통령관저에서 상춘재로 가는 길목에서 독주를 하는 국가무형문화재 대금산조 이수자 이석호 씨.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9일 더위가 가시지 않은 채 어둠이 내려앉은 밤. 별빛을 기대하긴 어려웠지만 그만큼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첼로와 가야금 소리. 전통 한옥 너머 솟구친 도심의 빌딩들이 빽빽한 숲처럼 포근하게 감싸는 기분마저 자아내는 곳. 얼마 전까지 일반인은 들여다볼 엄두도 못 내던 청와대가 이렇게 바뀔 줄 뉘라서 짐작했을까.

문화재청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과 한국문화재재단이 마련한 야간탐방행사 ‘청와대 한여름 밤의 산책’이 20일부터 국민을 찾아간다. 공식 개장을 앞두고 전날 모니터링에 나선 일반시민 27명에게 먼저 공개된 행사는 프랑스영화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1990년)가 떠올랐다. 청와대 깊숙한 관저 앞마당에서 첼리스트 김 솔 다니엘과 가야금 연주자 윤다영이 합주한 퓨전 국악 듀오 ‘첼로가야금’의 연주는 국악이나 클래식에 딱히 조예가 없어도 상쾌하고 감미로웠다.

야간탐방은 단지 연주회로 멈추지 않는다. 해설사가 동행한 여정에는 은은하게 역사가 흘렀다. 이날 해설사로 나선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장은 청와대 본관을 두고 “노태우 정부 때 지은 본관은 강력한 근대국가의 이미지를 드러내려고 푸른 기와에 콘크리트 양식을 혼합해 지었다”고 설명했다. 늦은 밤 출출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라면을 끓여먹었다는 관저 부엌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조깅을 했던 녹지원까지. ‘이야기’가 담긴 청와대를 찾은 시민들은 각자 그들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중 녹지원에서 선보인 ‘반딧불 조명 쇼’는 야간탐방의 하이라이트 격. 형형색색 빛을 내는 레이저 조명이 수백 그루의 나뭇잎 사이사이를 반딧불처럼 부유했다. 심 소장은 “녹지원 마당 한가운데 선 나무는 대한제국 때부터 한반도의 근현대사를 함께 견뎌왔다”고도 했다. 부인과 함께 행사에 참석한 박준흥 씨(75)는 “5월 10일 청와대 개방 첫날 오고 두 번째 방문이다. 불빛이 길을 밝혀줘 더 근사하다”고 말했다. 한 외국인도 연신 “브라보!”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번 야간탐방은 다음 달 1일까지 하루 두 차례(오후 7시 반, 오후 8시 10분) 선보인다. 회당 50명씩 1시간 30분 동안 연주회를 감상하고 산책하는 일정. 문화재청은 11일까지 사전 신청한 시민 가운데 1200명을 이미 추첨으로 선정했다. 한국문화재재단은 “반응이 뜨거워 가을 야간탐방행사도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란 문화유산을 시민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