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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 정책 송두리째 뒤흔드는 ‘저가 밀수담배’ 판친다

입력 | 2022-07-21 03:00:00

[담배 이제는 OUT!]〈6〉일반 담배보다 2000원가량 싸
정상 화물과 섞어 신고 없이 반입… 담뱃세 인상 효과 크게 반감돼
해외선 밀수 막자 담배 소비량 ↓… 불법거래 근절 의정서 비준해야




금연정책의 최대 적으로 손꼽히는 ‘담배 불법 거래’가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5년 34억 원에 불과했던 불법 담배 수입은 2020년 652억 원으로 약 20배로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에는 367억 원으로 줄었지만, 올해 다시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세계 각국이 봉쇄를 풀면서 국제 여행객이 늘어나고, 화물 수출입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으로부터 들어오는 밀수 담배가 역대 최대 수준으로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담배 밀수는 금연 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불법 행위”라며 “담뱃세를 인상하면서 어렵게 흡연율을 감소시켰는데, 싼 밀수 담배가 들어오면 정책 효과가 크게 반감된다”고 설명했다.
○ 진화하는 담배 밀수

밀수 담배는 국내 유통되는 일반 담배보다 1갑당 약 2000원이 싸다. 컨테이너 한 개(약 35만 갑) 분량의 담배가 밀수입되면 약 7억 원 상당의 부당 이득이 발생한다.

의료계 관계자는 “밀수 담배는 정부 관리망을 벗어나 있고, 가짜담배가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며 “밀수 담배가 청소년에게 흘러들어가 이들의 건강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담배 밀수 수법도 진화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정상 화물과 뒤섞여 신고 없이 담배를 국내로 반입하는 행태다. 화물칸 바닥은 물론이고 조각상 안에 숨겨서 들여오는 경우도 있다. 특히 컨테이너 앞쪽에는 마스크 등 정상 수입 품목을 실어놓고 커튼이 쳐진 컨테이너 안쪽에는 밀수 담배를 적재하기도 한다. 일명 ‘커튼치기’ 수법이다. 공해상에서 중국 선박으로부터 밀수 담배를 넘겨받는 행위도 늘어나고 있다.

수출용 국산 담배를 국내에 퍼뜨리는 수법도 있다. 예를 들어 스리랑카 등 외국으로 담배를 수출하는 것처럼 서류를 만들고, 실제로는 빈 담배 케이스만 보낸 뒤 내용물은 국내에 유통시키는 것이다. 수출용 국산 담배는 갑당 1700원 정도인데, 이런 과정을 거치면 국내 최종 소비자에게 3500원가량에 판매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대규모 밀수를 저지른 국내 담배 전문 밀수조직이 검거되기도 했다. 인천해양경찰서는 1월 수출용 국산 담배 360만 갑(시가 170억 원 상당)을 지난해 5∼7월 10차례에 걸쳐 인천항으로 반입한 밀수 조직을 검거했다.
○ 담배 불법거래 근절 ‘의정서’ 국내 비준 시급
담배 밀수는 전 세계적으로도 불법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2년 서울에서 열린 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제5차 당사국총회에서 담배제품 불법거래 근절을 위한 의정서를 채택했다. 2018년 발효돼 올해 7월 현재 전 세계 65개국이 이 의정서에 대한 비준을 마쳤다.

의정서에는 국가별 담배공급관리체계 구축, 국가 간 담배 유통 추적을 위한 국제 모니터링 체계 구축, 담배제품 제조 장비의 제조 및 수출입 허가제 도입 등 담배 불법거래 방지를 위한 조치들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정작 이 의정서는 아직 국내 비준을 받지 못했다. 세계 각국이 서울에서 채택된 이 의정서를 ‘서울 의정서’라고 공식적으로 부르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국내 비준 절차가 늦어지면서 한국은 이 의정서의 당사국 자격도 얻지 못했다. 불법 담배거래 근절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담배제품 불법거래 근절을 위한 의정서는 보건 분야 국제협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담배규제기본협약에서 탄생한 첫 번째 의정서”이며 “관계 부처와 협의하여 현재 추진 중인 의정서 비준 절차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불법담배 근절 정책으로 담배 소비 줄여야
전문가들은 불법담배 근절이 담배 소비량을 줄여 국민 건강에 기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해외 논문에 따르면 불법담배가 담배 시장의 15% 이상인 나라에서 불법담배 근절 노력을 기울이면 담배 소비량이 평균 4.1% 줄었다. 불법담배가 줄면서 합법담배 판매 증가로 인한 세수가 25.1%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영국은 2013년 담배산업 지원에 관한 지침을 개정해 담배제조 허가제, 담배제품 공급망 규제 및 추적관리, 납세표시제, 벌과금체계 수립, 국경 간 불법거래 방지를 위한 국제협력 공조 등을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 불법담배 소비가 2001년 170억 개비에서 2017년 55억 개비로 3분의 1가량으로 감소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