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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노인[이은화의 미술시간]〈224〉

입력 | 2022-07-21 03:00:00

디에고 벨라스케스 ‘세비야의 물장수’, 1618~1620년.


살아가는 데 물은 중요하다. 물이 흐르는 곳에 도시가 번성했고, 깨끗한 물은 생명 유지에 반드시 필요하다. 물은 오래전부터 하나의 상품이기도 했다. 17세기 스페인에서는 이미 물을 사고파는 일이 일상이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세비야 사람들의 물 거래 장면을 그림으로 남겼다.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다. 펠리페 4세의 궁정화가로 활약하며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이 그림은 그의 아주 초기작이다. 고향 세비야를 떠나 마드리드로 가기 직전에 그린 것으로, 당시 그의 나이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이었다. 그림은 벨라스케스의 섬세하고 뛰어난 묘사력뿐 아니라 그가 얼마나 인물의 심리 표현에도 탁월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화면 오른쪽 물장수 노인은 왼쪽 청년에게 물 잔을 건네고 있다. 잔 속에는 물의 맛과 향을 돋우기 위한 검은 무화과가 들어있다. 방금 물을 따랐는지 노인이 잡고 있는 커다란 도기 물병 표면에는 물방울이 흘러내리며 반짝인다. 두 사람은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노인은 검게 그을린 피부에 해지고 낡은 옷을 입은 반면에 청년은 하얀 피부에 깨끗하고 단정한 차림새다. 한눈에 봐도 서로 다른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다. 잘 보이지 않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물을 마시고 있는 또 다른 남자가 묘사돼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시선이다. 서로 눈을 전혀 맞추지 않는다. 물장수는 그저 물을 팔 뿐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청년 벨라스케스는 이 주제에 꽤 매료됐던 듯하다. 거의 똑같은 그림을 세 점이나 그렸다.

노인과 청년이 서로 시선을 외면하는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하류층 물장수 노인과 상류층 청년을 이어주는 매개가 물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화가는 물장수 노인을 성자나 철학자처럼 근엄하게 그렸다. 이는 어쩌면 청년 화가가 바라는 자신의 미래 모습일지도 모른다. 설령 성공하지 못해 가난하더라도 품위를 지키며 늙어가는 노인이 되고 싶은 바람 말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