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세 이성우 씨(가운데)가 정상근 대한사이클원로회 회장(왼쪽), 윤재극 씨와 함께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사이클을 타고 있다. 80세 중반까지 축구를 하던 이 씨는 무릎 연골이 닳아 사이클로 바꿨고 5년 전 정 회장과 윤 씨를 만나 주말마다 함께 라이딩을 하며 건강한 노년을 즐기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양종구 기자
50세 무렵인 1970년대 중반부터 축구를 했다. 80대 중반에 이르자 무릎이 아파 더 이상 공을 찰 수 없었다. 그때부터 사이클을 탔다. 의사도 자전거를 권했다. 페달을 밟을 땐 무릎이 아프지 않았다. 100세를 눈앞에 둔 이성우 씨(97)에게 사이클은 최고의 건강 지킴이이자 친구다.
“사이클은 축구를 대체한 운동이었죠. 너무 좋았어요. 사이클 탈 땐 진짜 무릎이 전혀 아프지 않아요. 운동도 되고. 인생 후배들과 경기 용인, 남양주 등까지 사이클 타고 가서 맛난 것 먹고 돌아오는 재미도 쏠쏠하죠.”
이 씨는 시속 30∼40km로 달릴 정도로 수준급이지만 혹 다칠 수 있어 가급적 천천히 달린다.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에 한강사이클클럽 회원들과 40∼50km를 달리고 있다. 20∼30km 갔다 그 지역에서 점심 먹고 다시 돌아오는 4∼5시간 코스다. 사이클 타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이를 얘기하면 ‘지금까지 만나본 최고령’이라며 다들 놀란다. 이 씨는 요즘 젊은이들이 즐기는 업힐(오르막) 라이딩과 전국일주는 부상 위험과 체력적인 문제로 하지 않는다. 그는 “평탄한 길을 좀 길게 달리는 게 내 몸엔 가장 맞는다”고 했다.
“젊을 땐 서울 광진구축구연합회 구의축구회에서 공을 찼죠. 당시엔 백남봉, 남보원 등 연예인 축구팀과도 경기를 했어요. 나이 들어 연골이 닳아 없어져 사이클을 탔는데 신세계를 만난 것 같았죠. 사이클이 없었다면 정말 재미없는 세상이었을 겁니다.”
혼자 사이클을 즐기던 이 씨는 라이딩 중 만난 정상근 대한사이클원로회 회장(86), 윤재극 씨(85) 등과 매주 함께 달린다. 사이클 국가대표 출신 정 회장은 대한사이클연맹 경기이사 등을 지낸 뒤 20여 년 전부터 생활 사이클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한강사이클클럽을 만들어 회원들과 함께 질주하고 있다. 정 회장은 주 5일 이상 탄다. 사이클 타기 그 자체가 삶이다. 그는 20년 전 서울에서부터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19시간 30분 만에 질주했다. 생활 사이클계에선 전설로 불리는 기록이다. 당시엔 길도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금은 길이 정비돼 있는데도 젊은이들도 20시간을 훌쩍 넘긴다. 아직도 서울 북악스카이웨이, 남산 등 업힐도 거뜬히 오른다. 그는 70년 넘게 사이클을 타며 건강을 지키고 있다.
2000년경 다니던 외국계 회사를 그만둔 윤 씨는 서울 한강공원에 나갔다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보고 아들 자전거를 빌려 타기 시작했다. 정 회장을 만나 한강사이클클럽에서 본격적으로 사이클을 탔다. 윤 씨와 정 회장은 4대강은 물론이고 제주 일주 등 전국에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사이클 투어도 많이 했다.
정 회장은 “(이)성우 형님을 처음 만났을 때 제 또래인 줄 알고 인사를 건넸다가 열한 살이나 많은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현재 국내에서 사이클을 자유자재로 타는 최고령일 것”이라고 했다. 윤 씨는 “성우 형님은 식사도 잘한다. 우리보다 많이 드신다. 술도 한잔씩 하신다. 진짜 내일모레 100세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얼굴 좀 봐라. 주름도 하나도 없다”고 했다. 셋은 입을 모았다.
하지만 몸에 좋다고 고령에 사이클을 바로 타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송홍선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스포츠과학연구실장(52)은 “자전거를 타려면 근력과 밸런스, 운동신경 등을 조화시키는 협응력이 좋아야 한다. 97세에도 탄다는 것은 젊었을 때부터 꾸준히 관리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동아사이클대회 챔피언(1982, 1984년) 출신 김동환 프로사이클 대표(60)는 “고령에는 자전거를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자세로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