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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날씨…8월도 ‘덜 더운 여름’ 가능성[이원주의 날飛]

입력 | 2022-07-22 12:30:00


날씨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6월 더위에 이어 7월 상순에는 열대야까지 나타나면서 더위에 약한 사람들을 위협하더니 7월 중순이 되자 거짓말처럼 무더위가 사그라들었습니다. 지역 편차는 있겠지만 중부와 남부지방 모두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17일 전남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 수락폭포에서 더위를 식히는 피서객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무척 더웠던 6월에 이어 7월 상순에는 전국 대부분 지방에 폭염특보가 발효됐습니다. 열대야까지 나타나는 등 예년 이맘 때 느끼지 못했던 더위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서울의 경우 7월 5일 최저기온이 26.4도를 기록했습니다. 그렇게 더웠던 2016, 2018년에 이 정도 최저기온은 7월 23일부터 나타났습니다. 2018년에는 7월 중순에도 강원산간과 강원, 경기북부에는 폭염특보가 내려지지 않았는데, 올해는 7월 1일에 이보다 많은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려졌습니다.

2018년 7월 14일과 올해 7월 1일의 폭염특보 현황 비교. 엄청난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2018년보다 올해 7월이 더 덥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기상청

그런데 이런 더위는 7월 11일을 전후해 마법처럼 누그러졌습니다. 한낮 기온은 30도 언저리로 ‘일반적인’ 여름 수준으로 떨어졌고 최저기온은 7월 11일 이후 25도를 넘은 날이 아직 없습니다. 7월 초부터 내려졌던 폭염특보는 적용 지역이 점점 줄어들더니 급기야 7월 17일에는 전국 모든 지방에서 폭염특보가 해제됩니다.

서울과 부산의 최고, 최저기온 그래프. 7월 상순(1~10일)에는 최근 10년 대비 기온이 크게 높았지만 이후 비슷해진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상청


그야말로 날씨가 거꾸로 갔습니다. 원인이 뭘까요. 표면적인 이유는 한반도 북쪽에서 찬 공기가 지속적으로 내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와 러시아 사할린, 캄차카 반도 사이에 있는 ‘오호츠크해’ 상공에 거대한 고기압이 생겼고, 상대적으로 한반도 북쪽 지방에는 강한 기압골이 만들어지면서 북쪽 찬 공기를 마치 펌프처럼 공급해 준 겁니다. 거기에다 이 기압골과 남쪽 뜨거운 고기압 사이로 제트기류가 흐르면서 우리나라에 뜨거운 여름 공기가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

7월 18일 한반도 상공(5.5~12km) 상공의 일기도. 남쪽 더운 공기는 막히고 북쪽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내려오는 지형이 만들어졌습니다. 기상청


이처럼 강한 고기압이 이례적으로 오래 버티는 원인은 바닷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이 관측한 해수면온도 자료를 보면 평소보다 오호츠크해 쪽 바닷물의 수온이 비정상적으로, 그것도 매우 높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뜨겁게 달궈진 바닷물이 바다 위 공기를 뜨겁게 데우고, 그 공기가 높은 하늘에서 켜켜이 쌓이면서 엄청난 규모의 고기압이 태어난 겁니다.

평소와 수온 분포가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는 지도. 사할린 동북쪽 오호츠크해의 기온이 시커멓게 표시될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높습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


이 고기압이 약해지면서 기압골이 풀어질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우리나라 상공에는 계속해서 한기가 공급될 수 있습니다. 즉, ‘덜 더운 여름’이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실제 기상청은 10일 후까지의 날씨를 예보하는 중기예보에서 7월 말까지 서울의 낮최고기온이 높아야 31도 수준일 것으로 예보했습니다. 해외 기상예보 업체인 아큐웨더 등은 여러 달 뒤까지 내다본 초장기예보를 발표하고 있는데, 이 자료를 봐도 7월 말 며칠 간 서울 낮최고기온이 33도까지 오르겠지만 8월이 되면 다시 30도 언저리로 떨어질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낮 최고기온 33도는 폭염주의보 발표 기준 온도입니다.


기상청이 발표한 7월 말까지의 중기예보(위)와 해외 기상업체 ‘Accuweather’가 발표한 8월 예보. 극심한 무더위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상청, Accuweather


이런 현상에 대해 해양 및 대기과학 전문가인 예상욱 한양대학교 에리카 해양융합공학과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예상욱 한양대학교 에리카 해양융합공학과 교수


“상공의 기압 배치가 단순히 대기의 흐름만으로 만들어졌다면 1주일 이상 유지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서태평양(우리나라 부근 태평양)과 중태평양 부근에 강하게 발달한 라니냐의 영향으로 뜨거워진 바닷물이 대기 흐름에 강제력을 주고 있어서 기압 배치가 쉽게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라니냐는 지속 기간이 2년 반을 넘어가고 있는데, 이처럼 라니냐 지속 기간이 만 2년을 넘어가는 ‘트리플 딥’ 라니냐는 1950년 이래 이번을 포함해 단 두 번 밖에 관측되지 않을 정도로 이례적입니다.”라니냐를 비롯한 해수면온도를 보면 현재 유럽지역의 엄청난 폭염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포르투갈 47도 스페인 45도, 프랑스 42도 등 남서 유럽을 중심으로 극심한 폭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16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스프링클러 앞에 서서 더위를 식히는 현지 주민들. 남서 유럽에는 최근 40도를 넘는 기록적인 폭염이 곳곳을 휩쓸었습니다. 바르셀로나=AP 뉴시스


그런데 이들 국가 인근의 대서양 동쪽 해수면 온도를 보면 평소보다 수온이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온이 낮은 해수면 상공은 인근 대륙의 상공에 비해 공기의 팽창이 덜하기 때문에 기압이 낮습니다. 즉 저기압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이 저기압이 반시계방향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남쪽의 무더운 공기를 안 그래도 벌겋게 달궈진 육지로 열심히 퍼나르는 그림이 남서 유럽 상공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상황과 완전히 반대인 겁니다.


스페인 서쪽 대서양의 차가운 수온을 관측한 NOAA 지도(위)와 해당 지역에 뜨거운 남풍을 공급한 저기압. NOAA, earth.nullschool.net


예측을 뛰어넘고 길어진 라니냐, 그 중에서도 특히 뜨겁거나 차가운 바다, 그리고 그로 인한 날씨의 변화. 근본적인 원인은 장기간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학계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부작용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운이 좋아(?) 올해 극심한 폭염을 피해간다고 해도 언제 2018년 같은, 또 올해의 유럽 같은 ‘지옥불 더위’가 찾아올 지 아무도 모릅니다. 재난이 일상이 되지 않도록,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