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책의 향기]세기의 이야기꾼과 함께한 마지막 날들

입력 | 2022-07-23 03:00:00

◇미하일 엔데의 글쓰기/미하일 엔데 다무라 도시오 지음·김영란 옮김/316쪽·1만6000원·글항아리




어느 소설가와 번역가의 대화를 담은 책이다. ‘모모’ ‘끝없는 이야기’ ‘기관차 대여행’ 등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세계를 창조해낸 독일 소설가 미하일 엔데(1929∼1995)와 그의 문장을 일본어로 옮겨온 번역가 다무라 도시오(70)가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1995년 8월 엔데가 타계하기 하루 전날까지 함께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죽음을 목전에 둔 노(老)작가는 오랜 친구와 대화를 나눴고, 친구는 그의 말을 충실히 기록했다.

저자는 엔데와의 대화를 통해 ‘쓴다는 것’ ‘소년 시절의 기억’ ‘사색의 시기’ ‘꿈’ ‘죽음’을 주제 삼아 그가 삶에서 건져 올린 생각을 펼쳐낸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삶과 죽음, 글쓰기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도 담았다. 독일 뮌헨 슈바빙의 예술지구에서 보낸 어린 시절, 나치 지배하의 독일에서 목격한 폭력과 강압, 연극학교에서 배우로 활동했을 때 느꼈던 것들, 이탈리아 팔레르모 광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야기꾼을 보고 작가로서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자 결심한 순간 등이다.

특히 글쓰기에 관한 엔데의 생각은 인상적이다. 그는 글을 쓰기 위해선 현대사회에서 사라져가는 정신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와 인간의 바깥 세계보단 인간의 내적 세계에서 비롯된 고민에서 글쓰기의 시작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엔데의 주장이다. 자연과학적 주장을 무조건 진리로 받아들이는 태도 역시 잘못됐다고 말한다. 도식이 그어 놓은 경계 너머에서야말로 모든 인간의 내면에 사는 어린아이를 깨우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엔데를 인터뷰한 다무라는 그의 오랜 친구이자 번역가이자 애독자다. 그렇기에 엔데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 더 잘 이해할 만한 내용도 다수 담겨 있다. 엔데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다무라가 회고하는 엔데의 모습을 통해 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거장의 경험과 생각이 마구 섞인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