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폴 크루그먼 지음·김진원 옮김/664쪽·2만5000원·부키
“이게 다 좀비 탓이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초기 ‘노 마스크’를 고수하며 방역에 불복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좀비에 비유한다. 저자에게 좀비란 문제 해결 능력은 없으면서 정치적 이념 대립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나쁜’ 정책과 이론을 뜻한다.
방역 불복 정책은 얼핏 무모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정치적 셈법에 따른 전략이었다. 2020년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 정권에 코로나19가 불러올 경제 불황은 지지율을 떨어뜨릴 수 있는 위협이었다.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은 단 하나. 코로나19 그딴 거 없고 미국 경제는 다시 살아날 거라는 맹목이다. 생사가 걸린 문제에 정치적 셈법이 끼어든 결과 방역 골든타임을 놓쳐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다만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를 좀비라고 단언하는 건 독단일 수 있다. 좀비는 제거 대상일 뿐 대화 상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긴축정책파와 사회보장제도 반대파를 좀비라 명명하지만, 이는 기후변화나 코로나19 위기와는 다른 정치적인 문제다.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세금을 거둬 어떤 이에게 재분배할 것인지. 정부가 얼마만큼의 지출을 감당할 수 있으며 만약 정부의 재정을 긴축해야 한다면 어떤 이들이 희생을 감내할 것인지. 다른 생각들이 치열하게 맞붙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하는 대화의 영역이다. 어쩌면 반대파를 좀비라고 규정짓는 행위 역시 사라져야 하는 이 시대의 좀비일지 모른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