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가 비상한 기억력과 상상력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승승장구한다는 판타지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제1회 장애인 US오픈에서는 ‘우영우’ 못지않은 꿈같은 드라마가 펼쳐졌다. 발달장애 프로골퍼 이승민(25)이 연장 접전 끝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골프 역사의 일부가 됐다.
▷이승민은 두 살 무렵 자폐성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다. 지능지수(IQ)는 6, 7세 수준인 66으로 평균(85∼115)보다 낮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냄새만으로 종류를 알아맞힐 정도로 잔디를 좋아했고, 커서는 푸른 잔디 위를 나는 하얀 공까지 사랑하게 됐다. 중1 때 골프채를 잡고, 고2 때 세미 프로골퍼 자격증을 땄으며, 3년 후인 2017년엔 비장애 선수들도 힘든 ‘골프 고시’ 1부 투어 프로 선발전을 통과했다. 발달장애 선수로는 처음이었다.
▷자폐성 장애인이 운동을 잘하기는 어렵다. 감각과 운동을 담당하는 뇌의 시상(視床)과 신경세포의 집합체인 대뇌피질을 연결하는 경로가 손상돼 있다. 통합운동능력이 떨어져 걸음걸이나 손동작이 부자연스럽고 자전거 타기를 힘들어한다. 머리로는 자전거의 작동 원리를 아는데 발로는 페달을 굴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승민 선수의 어머니는 “배우고 나면 금방 잊어버려 끝없이 반복 훈련했다. 공에 집중하고 그 집중력을 유지하도록 가르치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고 전했다.
▷장애인 US오픈에선 15세 소녀부터 80세 할아버지까지 골퍼 96명이 참가해 장애 정도에 따라 서로 다른 코스에서 3라운드 54홀 경기를 펼쳤다. ‘자폐증’은 유사 장애와 합쳐 2013년부터 ‘자폐스펙트럼’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장애는 있고 없고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인 것이다. 국내 자폐성 장애인은 3만4000명. 이들의 부모는 자녀가 우영우나 이승민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제 모습대로 제 필드에서 자립할 수 있는 사회를 꿈꿀 뿐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