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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경찰을 존중해야 경찰이 시민을 보호할 수 있다[광화문에서/조종엽]

입력 | 2022-07-23 03:00:00

조종엽 사회부 차장


18일 제주경찰청이 공개한 영상이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16일 오전 1시경 제주시 한림읍의 한 주점 앞에서 경찰관이 장봉으로 남성 피의자를 제압하는 영상이었다. 영상 속 경찰관은 장봉을 세차게 휘두르며 나아갔고, 흉기를 든 피의자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경찰관은 장봉으로 피의자의 오른 손목과 팔을 내리쳐 흉기를 내려놓게 했고, 그 틈을 타 나머지 경찰 3명이 달려들어 제압에 성공했다. 경찰이 흉기를 든 범인을 몰아세우는 모습에 누리꾼들은 박수를 보냈다.

영상 속 주인공은 1996년 경찰에 입직한 26년 경력의 한림파출소 순찰2팀장 박정현 경감(49)이다. 방검복을 입었다지만 피의자가 손에 든 길이 23cm의 회칼을 휘둘렀다면 위험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박 경감에게 전화로 “두렵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런 상황을 많이 경험했고, 무도를 오래 수련해 충분히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영상을 본 일부 누리꾼은 경찰이 테이저건을 쐈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에 관해 박 경감은 “그러면 피의자가 쓰러지면서 자기 칼에 찔려 다치거나 사망할 수도 있다”며 “더 위험한 상황이었다면 그랬겠지만 장봉으로도 제압할 수 있다고 봤다. 여차하면 테이저건을 쏠 준비가 된 동료 3명도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박 경감은 다치지 않고 무사히 범인을 제압했다. 그러나 매일 수많은 경찰이 치안 현장에서 다치거나 폭행을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학술지 ‘치안정책연구’ 2021년 12월호에 실린 논문 ‘경찰공무원의 폭력 피해 과정과 영향에 관한 연구’(저자 이재영 세한대 교수)에 따르면 2015∼2019년 경찰 2470명이 범인의 공격을 받아 다쳤고 3명이 순직했다.

경찰 폭행 등 공무집행방해 사건도 2020년에만 1만789건에 달한다. 동료 업무 가중 등을 이유로 경찰이 사법 처리를 꺼리는 경향이 있기에 실제 공무집행방해 사건은 더 많을 것이다.

지구대, 파출소에 근무하는 경찰들은 취객으로부터 욕설을 듣는 것이 다반사고, 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논문 인터뷰에 응한 경찰들은 얼굴이나 가슴을 주취자의 주먹이나 발로 가격당하거나, 할큄을 당하거나, 머리채를 잡힌 경험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난동을 부리던 주취자에게 물린 경찰도 있었다.

폭력 피해를 겪은 경찰은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경찰들은 “경악했고, 심적 충격이 대단했다” “그때만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든다” “내가 부족해 폭행을 당했다는 생각에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대민 활동에 소극적으로 변했다는 경찰도 적지 않았다. 한 경찰은 “예전에는 출동하면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현장에서 해결해주려고 노력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다른 경찰은 “폭력 피해 트라우마가 있기에 다가가는 대민 서비스는 어렵다”고 했다.

밤길에 칼 든 범인을 만났을 때 경찰이 대신 나서 장봉이나 테이저건으로 맞서주길 바란다면 먼저 경찰부터 존중해야 한다. 시민이 경찰을 존중해야 경찰이 시민을 보호할 수 있다.



조종엽 사회부 차장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