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여년 이어진 의회의 백악관 소풍 당적을 초월한 ‘협치 정신’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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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백악관 잔디밭에서 열린 의회 소풍. 조 바이든 대통령이 보좌관 부부 가족과 사진을 찍고 있다. 백악관 홈페이지
“I wish we were able to do more of this so that you all got to know one another well.”(서로 알아가는 이런 행사가 좀 더 있었으면 한다)
햇빛 좋은 여름날 미국 정치인들은 단체 소풍을 떠납니다. 백악관으로 갑니다. ‘congressional picnic’(의회 소풍)은 수십 년간 이어져온 미국 정가의 전통입니다.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하는 의회 소풍이 열렸습니다. 명칭은 ‘의회’ 소풍이지만 국회의원들만 대상은 아닙니다. 의원, 장관, 백악관 관리, 행정부 직원과 가족들까지 합쳐 1000명이 넘는 인원이 백악관 잔디밭에서 각종 음식과 놀이를 즐겼습니다. 필라델피아 명물 치즈스테이크, 프라이드치킨, 바비큐 등의 메뉴가 준비됐고, 아이들은 대통령 인장이 박힌 포장지의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뛰어다녔습니다. 손자 손을 잡고 온 낸시 펠로시 하원의원장은 볼이 터져라 햄버거를 먹으며 수다를 떨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주느라 바빴습니다.
이날 소풍은 1·6 의회 난입 사태 청문회, 대법원의 낙태권 폐기 결정 등을 놓고 정치권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열렸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의회 소풍을 두고 “바이든식 소통 이벤트”라고 불렀습니다. 신이 난 바이든 대통령은 “이런 행사가 더 좀 많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미국 정치는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의회 소풍처럼 화해하는 기회가 많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의회 소풍들을 알아봤습니다.
2015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록앤롤 댄스파티를 주제로 백악관 잔디밭에서 열린 의회 소풍. 백악관 홈페이지
“Democracy can be contentious, but events like today remind us that we‘re all on the same team, that’s the American team.”(민주주의는 시끄럽다. 하지만 오늘과 같은 행사는 우리가 한 팀, 즉 미국 팀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의회 소풍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해리 트루먼 대통령 때 시작됐습니다. 처음에는 당 내부 행사로 출발했습니다. 민주당 소속의 트루먼 대통령이 민주당 정치인 150여명을 모아 워싱턴에서 가까운 휴양지 체서피크 만으로 단합 여행을 떠난 것이 시초입니다.
1967년 린든 존슨 대통령은 의회 소풍이 당파적 행사로 운영돼서는 안 된다며 양당 정치인과 행정부 관리들도 참석할 수 있도록 범위를 늘렸습니다. 가족들도 참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장소는 백악관으로 바뀌었습니다.
매년 소풍 주제는 대통령이 정합니다. 서부 분위기의 ‘와일드 웨스트,’ 뉴욕 스타일의 ‘브로드웨이,’ 뉴올리언스 축제 ‘마디그라’ 식으로 해마다 주제가 바뀝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5년 ‘sock hop’(삭 홉)이라는 1950~60년대 양말을 추켜올려 신고 록앤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댄스 파티를 주제로 열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훌륭한 축사를 했습니다. 민주주의는 록앤롤 음악처럼 시끄럽고 정신 사납게 들리지만 구성원들은 한 팀, 즉 미국 팀이라는 의식을 공유한다는 내용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논쟁이 자주 벌어집니다. 그래서 ‘democracy’는 ‘contentious’라는 형용사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contend’는 서로 다른 주장을 가진 사람들이 ‘대결하다’는 뜻입니다. 형용사인 ‘contentious’는 ‘논쟁적인’ ‘호전적인’ 등의 뜻입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부부가 발송한 2001년 9월 11일 의회 소풍 초대장. 9·11 테러로 소풍은 열리지 못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센터 홈페이지
“The people are pulling in the same direction, much to the chagrin of the enemy.”(적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지금 미국은 똘똘 뭉쳤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1년 텍사스 바비큐 스타일의 의회 소풍을 준비했습니다. 소풍일은 9월 11일, 바로 9·11 테러가 터진 날이었습니다. 행사는 이날 오후 5시 30분에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텍사스에서 바비큐 그릴까지 공수해오며 만반의 준비를 마쳤지만 오전 9시쯤 테러가 발생하면서 소풍은 취소됐습니다.
이듬해인 2002년 6월 부시 대통령은 의회 소풍을 재개했습니다. 하지만 1년 동안 미국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소풍 분위기는 비장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소풍 인사말로는 어울리지 않게 ‘전쟁’ ‘적’을 거론했습니다. ‘pull in the same direction’은 ‘같은 방향으로 당기다’ ‘일치단결하다’는 뜻입니다. 불어에서 유래한 ‘chagrin’(셰그린)은 유감스러운 감정을 표현할 때 씁니다. ‘유감스럽게도’라고 할 때 ‘to my chagrin’이라고 합니다.
2017년 의회 소풍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부부. 이듬해인 2018년 소풍은 당시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던 이민자 가족 분리 정책 때문에 취소됐다. 백악관 홈페이지
“It doesn‘t feel exactly right to me.”(영 아닌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의회 소풍이 열리기 며칠 전에 갑자기 취소했습니다.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는 이유였습니다. “무엇이 적절하지 않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It doesn’t feel right”는 정확한 이유를 대기는 힘들지만 느낌이 좋지 않을 때 쓰는 말입니다.
전문가들의 추론에 의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막판에 행사를 취소한 이유는 당시 추진 중이던 이민자 가족 분리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불법 이민자 부모는 구금해 추방시키고 자녀는 미국 내 친척 집에 보내거나 입양시키는 정책입니다. 이로 인해 최소 5000여 가족의 구성원들이 뿔뿔이 헤어졌습니다. 불법 이민자 가족은 생이별을 하는 판국에 정치인 가족들의 소풍은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준비했던 행사가 대통령의 한마디에 갑자기 취소되면서 음식을 병원에 기부하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 명언의 품격
백악관에서 열리는 소풍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의회 소풍이 있고, 독립기념일에 여는 ‘Fourth of July picnic’(7월 4일 소풍)이 있습니다. 정치인 대상의 의회 소풍은 소규모인 반면 일반인들을 초대하는 독립기념일 행사는 불꽃놀이와 함께 성대하게 펼쳐집니다.
독립기념일 소풍은 백악관에서 열리는 것이 전통이지만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 독립의 발상지인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의 인디펜던스홀(독립기념관)을 직접 찾았습니다. 이곳은 미국 건국의 주역들이 독립선언서와 헌법을 토론하고 작성한 장소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독립기념일 연휴 동안 필라델피아에서 머무르며 주민들과 어울렸습니다.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케네디의 다른 연설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미국인들 사이에는 건국이념의 정수를 담은 명연설이라는 평을 듣습니다. 그중에서 유명한 구절입니다.
1962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독립기념일 연설에 엄청난 인파가 모여들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To read it today is to hear a trumpet call.”(오늘 독립선언을 읽는 것은 분연히 일어나 행동하라는 것이다)
전쟁 용어인 ‘trumpet call’(트럼펫 콜)은 긴급 행동에 나서야 할 때 나팔로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독립선언이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미국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로 행동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For that Declaration unleashed not merely a revolution against the British, but a revolution in human affairs’(왜냐하면 독립선언은 단지 영국 지배에 대항하는 혁명이 아니라 인간사 전반의 혁명이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 실전 보케 360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오늘 주제는 인플레이션입니다. 최근 제롬 파월 미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상원은행위원회에 출석해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물가 상승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결정 후에 밝힌 내용입니다.
최근 상원은행위원회에 출석해 인플레이션에 대해 발언하는 제롬 파월 미연방준비제도 의장. 미 상원 홈페이지
“Further surprises could be in store.”(추가적인 놀라움이 벌어질 수 있다)
파월 의장은 지난해 높은 물가 상승률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store’는 ‘상점’뿐 아니라 ‘비축’ ‘보관’의 뜻도 있습니다. 상점은 물건을 보관했다가 파는 곳이니 일맥상통하는 뜻입니다. ‘in store’는 ‘준비돼 있는’ ‘일어날 예정인’이라는 뜻입니다. “추가적인 놀라움이 상점 안에 있다”가 아니라 “벌어질 수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You never know what life has in store for you”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물론 직역대로 ‘상점 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in-store banking’은 ‘상점 내 은행 서비스’를 말합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이어지면서 ’빅스텝’ ‘자이언트 스텝’ ‘울트라 스텝’ 등 다양한 단어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스텝’이 너무 많아서 헷갈릴 정도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의 복잡한 ‘스텝 분류법’을 잘 모릅니다. 미국인과 소통할 때 대뜸 “giant step”이라고 하기보다 앞에 “so-called”(일명)를 붙어주거나 뒤에 “which means 75 basis-point rate hike”(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의미한다)라고 부연설명을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21년 6월 7일 소개한 대통령의 소통 행보에 대한 내용입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 소풍을 포함한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personal and civilized approach(개인적이고 교양 있는 접근) 방식으로 국민에게 다가간다는 전략입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19 소상공인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워싱턴의 멕시코 음식 전문 레스토랑에서 타코를 포장해 나오는 모습. 워싱턴포스트
▶2021년 6월7일자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10607/107297086/1
조 바이든 미국대통령의 ‘소탈 행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백악관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시간 날 때마다 바깥세상으로 나가 국민과 소통하는 것을 즐깁니다.
“Would you like to get a selfie?”(셀카 찍을래?)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행선지로 아이스크림 가게를 자주 택합니다. 최근오하이오 주를 방문했을 때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매니저로 일하는 20세 여대생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주로 학교생활에 대해 물어봤다고 합니다. 가게를 나오기 전 여학생에게 “나랑 셀카 찍을래?”하고 묻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 여학생이 친구들에게 대통령과 만난 것을 자랑할 수 있도록 사진을 같이 찍어준다고 배려한 것입니다. 외국인에게 함께 사진을 찍을 의향이 있는지 물을 때는 “셀카”가 아니라 “셀피”(selfie)라고 해야 합니다.
“A president who scopes out local establishments makes our city look so much more vibrant.”(지역 상권을 살피는 대통령은 도시의 인상을 활기차게 만든다)
얼마 전 바이든 대통령 부부는 워싱턴의 ‘르디플로마트’라는 레스토랑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부부와 식사를 했습니다. 식당에 들어가는 대통령 부통령 부부를 본 인근 주민들로부터 환호가 터졌습니다. 지역 시설이나 상권을 ‘local establishments‘라고 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방문했던 레스토랑의 매니저는 “지역 상권을 자주 방문하며 살펴주는 대통령은 도시의 인상을 매우 활기차 보이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scope out’은 ‘살피다’ ‘정찰하다’는 뜻입니다.
“I never thought of it.”(미처 몰랐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4년 동안 워싱턴에서 외식은 딱 한 번 했습니다. 그것도 백악관 인근의 자신 소유의 호텔 안에 있는 스테이크 레스토랑이었습니다. 한번은 주변에서 “백악관에 머물기보다 자주 외출해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모습을 보이면 대통령의 이미지도 좋아지고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해줬다고 합니다. 그러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처 몰랐다”고 털어놨다고 합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줄 누가 알았나”라는 뜻이죠. “I never thought of that”이라고 합니다.
‘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발행일을 7월 마지막주부터 토요일에서 화요일로 옮깁니다.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동아닷컴과 포털보다 더 빨리 ‘이런영어 저런미국’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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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