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샘 산업2부 차장
“현금 있는 사람은 최대한 버티고, 현금 없는 사람만 어쩔 수 없이 집을 내놓는 거죠.”
문재인 정부가 종합부동산세(종부세)와 재산세는 물론 양도세와 취득세까지 대폭 강화하며 집주인들의 세 부담이 늘어난다는 기사가 쏟아지던 당시, 한 부동산 전문가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는 “이미 서울 강남의 다주택자나 고가주택 보유자들은 지난 20여 년간 현 수준의 세금 규제는 지속되지 않는다는 걸 학습했다. 현금 동원력이 있는 사람들은 정권이 바뀌길 기다리며 버틸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21일 정부는 실제로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대폭 낮추는 내용의 세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주택 수가 많으면 세율을 높이는 중과를 폐지하고 주택 가액 기준으로 종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내놨다. 세율도 낮췄다. 주택 수에 따라 최고 300%였던 세 부담 상한도 다시 150%로 낮췄다. 과세표준을 산출할 때 공제하는 금액도 기본공제 금액을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1주택자는 12억 원까지로 높이기로 했다. 다주택자일수록, 고가주택 보유자일수록 더 큰 폭으로 세금이 줄어든다.
그런데 이번 세제 개편안을 보며 윤석열 정부는 과연 정책 효과와 세제 원칙을 고려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새 정부가 부동산 세 부담을 줄여주겠다고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부 출범 직후부터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를 한시적으로 배제하기로 했다. 여기에 재산세 부과에 활용되는 공시가격 개편도 공식화했다. 보유세와 거래세를 모두 대폭 낮추고 있는 셈이다.
물론 종부세를 주택 가액 기준으로 매기거나 공제금액을 높이는 방안 등은 세제를 합리적으로 조정한다는 의미도 있는 정책들이다. 하지만 이미 시장에서는 이번 종부세 개편안으로 양도세 중과 배제 이후 늘어났던 매물이 줄어들 조짐이 보이고 있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종부세 부담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문의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가격이 하락한 지방의 저가 주택을 매수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양도세 중과 배제로 나타났던 정책 효과를 정부 스스로 거둬들이는 정책을 석 달도 되지 않아 내놓은 셈이다.
세제 개편안은 국회를 통과해야 실제 시행된다. 여소야대 형국에서 원안 그대로 통과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많다. 여당과 정부 역시 다시 한번 정책 효과와 시장 전망을 면밀히 살펴야 하고, 현재의 부동산 시장 왜곡에 책임이 있는 야당도 단순히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시장에 미칠 영향과 세제 원칙 등을 고려한 합리적인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
이새샘 산업2부 차장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