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가 50억 공사비 못 받자 유치권 설정해 현장 건물 점유 경매 나온 토지는 거듭 유찰 기존 판례 분석뒤 12억에 낙찰 건물 철거-명도소송 진행하며 건설사에 38억에 다시 팔아
정충진 법무법인 열린 대표변호사
수년 전 경기 평택시에 있는 한 공장용지 3299m²(약 1000평)가 경매에 나왔다. 주변에 유사 업종 공장들이 몰려 있었고 고속도로 나들목(IC)도 가까워 입지가 꽤 좋았다. 감정가는 22억여 원이지만 두 번 유찰돼 10억8000만 원까지 떨어졌다. 매각물건명세서를 보니 거액의 유치권이 신고돼 있었다. 국내 굴지의 건설사에서 50억 원 가까운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현장을 점유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낙찰자가 인수해야 할 유치권 금액이 시세를 훌쩍 넘으니 애초 낙찰이 불가능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K 씨는 매각물건명세서를 꼼꼼히 살펴보고 쾌재를 불렀다. 물건명세서에는 ‘입찰 외 소유자 미상의 건축이 중단된 3층 건물 소재’라는 공지가 붙어 있었다. 이 의미는 준공이 안 된 지상 건물을 제외하고 토지만 입찰한다는 얘기였다. 지상 건물은 판례가 요구하는 지붕과 기둥, 주벽을 모두 갖추고 있어 건물로 보기에 손색이 없었다.
문제는 거액의 유치권이었다. 항간에 유치권의 90%는 허위라는 속설이 떠돌지만, 유치권자가 국내 유수의 건설업체여서 진정한 유치권으로 추정됐다.
계속 법적 검토를 해보던 K 씨는 이 사안에 딱 맞는 판례를 찾아냈다. 법정지상권이 성립되지 않는 건물의 유치권자는 토지 소유자에게 유치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판례였다. 어차피 철거될 운명의 건물은 유치권을 인정해주지 않겠다는 취지다. K 씨는 용기 있게 입찰에 나섰고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낙찰받았다. 낙찰가는 감정가의 56%에 불과한 12억5000만 원이었다.
권리 관계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는 은행을 설득해 낙찰가의 80%까지 대출을 받았다. K 씨는 곧바로 건축주와 유치권자를 상대로 건물 철거와 명도 소송을 진행했다. 유치권자에게는 따로 접근해 건물 철거를 빌미로 토지를 매입하라고 압박했다. 50억 원에 가까운 공사비가 투하된 건물을 포기할 수 없었던 건설업체는 결국 38억 원에 토지를 매입했다. 부대 비용을 포함해 대략 13억 원 정도에 해당 토지를 매입한 K 씨는 단기간에 시세차익만 25억 원을 얻었다. 대출을 제외한 실제 투자금은 고작 3억 원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한 성과다.
토지를 시세보다 훨씬 비싸게 매입했으니 유치권자가 큰 손해를 본 것 같지만, 철거될 건물을 살렸으니 사실상 유치권자도 이득이었다. 이것이 바로 특수물건 경매의 매력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