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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떠나야했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 모두의 인생 변해”

입력 | 2022-07-26 03:00:00

27일 재출간 ‘파친코’ 작가 이민진
“日서 고군분투했던 한국인의 경험
역사적 진실과 감정 전달, 가장 중요”




뜨거운 관심을 받은 애플TV플러스 드라마 ‘파친코’. 드라마의 원작 장편소설 ‘파친코’를 쓴 이민진 작가(54·사진)는 소설의 첫 문장을 작품의 주제로 삼는다. 27일 재출간되는 인플루엔셜 출판사의 ‘파친코’ 1권 첫 문장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가 그렇다. 역사가 삶을 짓밟아도 묵묵히 살아낼 것이라는, 재일 한국인의 파란만장한 사연과 담담한 시선이 이 한 문장 안에 응축돼 있다.

이 작가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파친코’의 첫 문장은 역사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내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생존하고자 계속 고군분투했어요. 이 문장엔 억압, 불평등에 대한 저항의 감정이 담겨 있죠. 저는 (역사의) 어마어마한 힘과 마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저항과 싸움에서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두 권짜리 소설 ‘파친코’가 국내 독자들에게 돌아온 건 3개월 만이다. 기존에 문학사상이 출간한 ‘파친코’는 올해 3월 드라마 공개 후 주요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1, 2위를 휩쓸었다. 그러나 4월 문학사상과의 계약 연장이 불발되면서 신간을 살 수 없게 되자 중고 책 1·2권 합본 세트가 10만 원을 넘을 정도로 가격이 치솟았다. 이 작가는 재출간 과정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일본에서 고군분투했던 한국인의 경험에 대한 역사적 진실과 명확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새로운) 번역자가 이야기가 의도했던 구조나 흐름, 언어까지 모두 잘 살려낼 수 있도록 많은 신경을 써줬다”고 밝혔다. 27일 1권이 재출간되며, 2권은 다음 달 말 선보인다. 이 작가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드라마 ‘파친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6년 미국 뉴욕으로 부모를 따라 이민을 갔다. 예일대 역사학과 재학 시절 재일 한국인 이야기를 구상한 뒤 2017년 미국에서 ‘파친코’를 출간하기까지 30년 가까이 시간을 들였다. 인터뷰한 이들이 수천 명에 달하고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샅샅이 훑었다.

“미국에 사는 수천 명의 한국인을 만나왔는데 결론은 그들은 엄청나게 복잡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지 않는 쪽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는 현재 한국인의 교육 열풍을 다룬 장편소설 ‘아메리칸 학원’을 쓰고 있다.

“세계에 있는 수십 개 학원을 방문했고 많은 사람을 인터뷰했습니다. 한국인은 학원에 대해 복합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 작품을 다 쓰면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2007년), ‘파친코’에 이어 ‘이산문학(디아스포라 문학)’ 3부작을 완성하게 된다. 왜 ‘회색인’의 이야기를 쓰는지 물었다. 그는 “어렸을 적 한국을 떠났다. 출생지를 떠나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 모두의 인생을 변화시킨다”고 돌아봤다.

한편 방탄소년단,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세계인에게 큰 사랑을 받는 이유에 대해 “빼어나기 때문”이라며 “세계적인 수준의 예술을 창조해낸 것은 엄청난 공로”라고 했다.

그는 올해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을 축하하는 미국 행정부 사절단으로 참가하면서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아줌마(Ajumma)가 사절단의 일원이 됐다”고 올려 화제가 됐다. “35시간이 넘는 여정이었지만 한국에서 한 끼 식사도 하지 못했다. 한국 음식을 좋아해서 무척 슬펐다”고 했다. 다음 방한 일정을 물으니 유쾌한 답이 돌아왔다.

“다음 달 (시상식 참석을 위해) 한국에 갈 예정입니다. 꼭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겁니다. 냉면이랑 빙수를 무척 좋아해요. 얼른 가고 싶어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