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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민감도, 가족끼리도 달라 갈등… “이 정도는 참자” vs “난 병원까지 다녀”

입력 | 2022-07-26 03:00:00

[층간소음, 이렇게 풀자]〈4〉객관적 소음 기준 현실화 필요
주간 43dB-야간 38dB 기준에도 이웃간 갈등 일괄 적용 힘들어
EU, 성가신 비율 10~20%로 정해… 정부 “기준치 2~5dB 하향 검토




서울 강동구에 사는 회사원 K 씨(48)는 최근 ‘층간소음 가해자’로 지목받은 뒤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아랫집 아주머니가 층간소음이 심하다며 수시로 인터폰을 하고 불쑥 찾아온다. 알고 보니 K 씨 집은 아랫집 아주머니 항의로 5년 새 세 번이나 이사를 나간 집이었다. 그는 “아무리 조심해도 어쩔 수 없이 생활소음이 나는데 설거지 소리나 변기 물 내리는 소리까지 문제 삼는다”며 “이젠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만 나도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관리사무소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해 답답하다”고 했다.

이처럼 아랫집만 아니고 윗집도 층간소음으로 마음고생을 겪는다. 국민적 스트레스가 된 층간소음은 사람마다 소음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고 소음을 입증하기도 어려워 더 문제가 된다.

같은 집에 사는 가족끼리도 층간소음 정도를 달리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명 ‘귀트임’ 현상으로, 대다수에게 큰 문제가 안 되는 소음이 특정인에게 고통스러운 경우다. 남편은 “이 정도는 참고 살자”고 하는데 아내는 “도저히 못 참겠다. 신경정신과까지 다니는데 남편이 왜 몰라주나”며 층간소음 갈등이 부부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다.

층간소음 판단의 객관적인 기준이 있긴 있다. 환경부와 국토교통부가 2014년 마련한 기준에 따르면 주간(오전 6시∼오후 10시)에는 1분간 평균 43dB(데시벨), 야간에는 38dB을 넘으면 층간소음으로 본다.

하지만 일반인이 층간소음을 정밀하게 측정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환경부가 발간한 층간소음 상담 매뉴얼만 보더라도 ‘아이들 뛰는 소리’가 40dB, ‘청소기 소리’가 35dB로 층간소음 기준치를 밑돈다. 심지어 욕실 급배수 소음은 주택 건설 시 소음의 정도가 정해진다는 이유로 층간소음에 포함되지 않는다. 사람마다 소음 민감도가 달라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도 어렵다.

뚜렷한 법적 처벌조항도 없다. 경범죄처벌법 ‘인근소란’ 조항이 있지만 이는 악기나 큰 소리로 이웃을 시끄럽게 하는 행위이지 층간소음을 대상으로 한 건 아니다. 공동주택관리법도 소음 발생을 중단하거나 줄일 것을 ‘권고’하는 수준이다.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순 있지만 측정도 입증도 쉽지 않고 절차도 복잡해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층간소음에 자주 항의하거나 우퍼 스피커(저음 스피커) 등으로 지속적으로 보복하면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에 걸릴 수 있다.

층간소음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극심한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객관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층간소음 기준을 현실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나 유럽연합(EU)에서 소음이 성가시다(annoy)고 느끼는 사람의 비율이 10∼20% 되는 소음 정도를 적정 소음으로 제안하는 데에 착안했다.

이경빈 환경부 생활환경과장은 “한국의 현행 주간 기준 층간소음(43dB)으로는 약 30%가 성가시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와 현 기준치보다 2∼5dB 정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