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정치부 차장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선이라던 3·9대선이 끝난 지 5개월도 안 됐건만 윤석열, 이재명의 ‘투샷’을 또다시 자주 보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대선 패배 후 기어이 국회에 입성한 이재명 의원이 이제 당 대표까지 하겠다고 나섰으니 말이다. 엄청난 이변이 생겨서 이 의원이 떨어지거나 중도 포기하지 않는 한 두 사람은 이제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로 비호감 대결 2라운드를 벌일 가능성이 높다.
둘 간의 물고 물리는 먹이사슬은 이미 돌아가기 시작했다. 17일 이 의원이 당 대표 출마 선언을 하자마자 국민의힘은 기다렸다는 듯 논평을 내고 “이제 ‘방탄 배지’를 넘어 당 대표라는 ‘방탄 갑옷’을 원하고 있다”고 했다. 검경도 대장동과 성남FC 후원금, 김혜경 씨 법인카드 유용 등 이 의원 관련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8·28 전당대회에 임박해 수사 결과가 발표될 수 있다는 전망에 이 의원 측은 “정치 보복”이라고 반발하지만 정작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스스로 키운 사법리스크”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 의원과 당권을 두고 경쟁하는 한 97그룹 의원은 “자꾸 97그룹에 새 비전을 제시하라고 하는데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 ‘이재명 리스크 없는 민주당을 만들겠다’는 것보다 더 훌륭한 비전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사석에서 웃자고 한 얘기지만 충분히 공감되는 말이다. 당직자들 사이에선 “이 의원이 당 대표가 되면 ‘경찰의 날’, ‘법의 날’에 민주당은 어떤 메시지를 내야 하느냐”는 ‘웃픈’ 고민도 나온다고 한다.
그 탓에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두 달 만에 3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익명의 여권 관계자가 “지지율이 한 자릿수까지 내려가면 탄핵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인터뷰를 해서 파장이 일었고, 민주당도 “또 한 번 불행한 탄핵의 역사가 되풀이될지 모른다”(김민석 의원) “대통령 권력의 사유화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박홍근 원내대표)이라며 연일 탄핵을 경고 중이다. 한동안 조용하던 추미애, 조국 전 장관마저도 스멀스멀 SNS를 재개했으니 여권의 위기는 확실해 보인다.
황당한 건 여권도 지지율 반등 카드로 ‘이재명 대표’의 당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점이다. 민주당 설훈 의원 말처럼 그가 여당의 ‘꽃놀이패’가 돼서 윤 대통령 지지율을 알아서 회복시켜 줄 것이란 기대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아무리 윤 대통령이 실망스러워도 ‘그래도 이재명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냐’라고 위안 삼는 사람이 아직 많다”고 했다.
결국 윤석열과 이재명은 서로의 존재만으로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지독한 상리 공생관계다. 그 둘 사이에 껴서 답답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국민들만 애꿎은 피해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