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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공급량 40→30→20%’…유럽 더 옥죄는 푸틴의 ‘에너지 전쟁’

입력 | 2022-07-26 09:53:00


독일과 러시아를 잇는 송유관 노드(노르트)스트림1은 최근 공급량이 절반 이상 줄었고, 노드스트림2는 완공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제재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뉴스1

러시아가 독일과 이어진 가스관 노드스트림1 공급량을 또 한 번 줄인다. 터빈 수리 때문이라는데, 독일 측은 공급량을 줄일 정당한 사유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제 유럽은 가스 비축량이 줄어 공장가동중단과 올겨울 난방연료 부족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유럽에서 발발한 또 하나의 전쟁, ‘에너지 전쟁’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러, 노드스트림1 ‘3차 공격’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출을 독점하는 국영 가스프롬은 25일(현지시간) 터빈 하나에 문제가 있어 유지 보수를 위해 가스 유입량을 설비용량의 5분의 1로 줄인다고 밝혔다.

가스프롬은 “터빈 중단으로 인해 가스 생산 능력이 27일 오전 4시 GMT(한국시간 27일 오후 1시)부터 하루 3300만입방미터(㎥) 수준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드스트림1은 발트해 해저를 통해 연간 550억㎥의 가스를 독일 등 유럽으로 공급해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에도 하루 1.5억㎥가량의 가스를 공급했었다.

이번 전쟁 국면에서 노드스트림1이 처음 ‘공격’받은 건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석유 수입 금지를 골자로 한 6차 제재를 확정한 뒤부터다.

가스프롬은 6월16일 가스터빈 수리 지연을 핑계로 공급량을 40%로 절반 이상 줄였다. 지난 11일부터 열흘간 공급을 완전히 끊는 연례 유지보수를 거친 뒤 20일부터는 30%로 줄여 공급을 재개했는데, 일주일 만에 또 20%로 줄인다는 것이다.

가스프롬이 처음 공급량을 줄일 때도, 이번에도 공급감소 이유로 든 건 가스터빈이다. 지멘스가 캐나다에 수리를 맡겼는데, 중간에 서방이 대러시아 제재를 펴면서 반환되지 못했다.

이후에는 지멘스와 가스프롬의 설명이 엇갈린다. 가스프롬은 지멘스가 터빈 목적 항로 관련 문서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지멘스는 러시아가 필요한 세관 서류를 발급하지 않아 선적 대기 중이라는 설명이다.

독일 경제부는 “터빈 납품을 위한 제재 예외 승인 요건이 충족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급감축의 ‘기술적 정당성’이 없다고 반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노드스트림1에는 늘 최소 하나 이상의 예비 터빈을 사용할 수 있는 정교한 비상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터빈을 두고 시끄럽지만, 터빈은 공급을 줄일 ‘진짜 이유’가 아니라는 의미다.

뉴스1

◇“명백한 에너지 무기화…제재 보복·서방결의 약화가 목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가스 공급을 무기화하는 게 분명하다고 봤다. 서방이 가한 대러시아 제재에 보복하고, 서방의 대우크라이나 지원 결의는 약화하려는 목적에서다.

40%→30%→20%. 특히 가스공급을 아예 끊지 않고 찔끔찔끔 남기면서 유럽을 옥죄는 방식으로 레버리지를 극대화하고, 유럽의 정치적 불화를 조장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브뤼셀 소재 싱크탱크 브뤼헬 선임연구원 시몬 타글리아피에트라는 “러시아가 유럽에서 전략적인 게임을 하고 있다”며 “이미 줄어든 가스유입량을 자꾸 흔들면 시장을 조종하고 지정학적 영향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최적화할 수 있어 완전한 공급 중단보다 유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의 움직임은 EU에너지 장관들에게 현명한 협상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압력을 높이는 것”이라며 “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조치가 됐다”고 덧붙였다.

가스프롬의 발표에 이날 유럽의 가스 도매가격은 메가와트시당 179유로(약 24만 원)로, 12% 급등했다. 올해 들어 이미 2배로 올랐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더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인플레이션 긴장이 고조된다는 의미다.

노드스트림1 공급 추가 감소는 유럽이 겨울을 앞두고 가스 저장고를 충분히 채우지 못할 것을 시사한다. 가스 경보가 최고 단계인 ‘위급’으로 올라가면 배급제가 실시돼 가정과 의료시설에 우선 공급, 산업계는 공장 중단 사태를 맞는다. 유럽 경제가 심각하게 침체된다는 의미다.

당장 EU는 지난주 회원국들에게 가스 수요를 15% 줄이자고 호소했다. 동시에 EU 및 개별국가 차원에서 노르웨이, 알제리, 미국, 카타르 등지에서 추가로 가스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독일은 해안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받기 위한 터미널을 건설 중이라, 단기적으로 하역을 처리할 부유식터미널 5곳을 전세냈다.

◇푸틴, 카드 더 있다…‘최악의 상황’ 오지도 않아

문제는 노드스트림1 외에도 푸틴이 공급 중단으로 위협할 파이프라인이 더 많다는 것이다. 개전 직전 EU의 에너지 소비는 가스가 23.7%로 2위였고, 그렇게 소비하는 가스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해왔다.

사실 유럽에 에너지 전쟁이 발발한 시점은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먼저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극으로 치닫던 작년 12월 독일은 완공 후 개통만 남은 신규 가스관 노드스트림2 승인을 지연하며 러시아를 압박했다. 이에 러시아는 벨라루스, 폴란드를 거쳐 독일로 연결되는 ‘야말-유럽 파이프라인’ 공급량을 줄인 뒤 협상을 시도하기도 했다.

현재 야말-유럽 라인 가스 유입량은 설비 용량의 40%도 안 될 만큼 대폭 줄었다. 야말-유럽 라인과 노드스트림1 외에도 러시아가 가진 ‘카드’는 여럿이다. 원자재데이터업체 ICIS에 따르면 이달 상반기 유럽의 파이프라인을 통한 러시아 가스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70% 줄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발표한 전망에 따르면 대러 가스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의 경제는 이대로면 뒷걸음질이 예상된다. 헝가리는 6.5%, 이탈리아 5.7%,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각각 3% 정도 경제가 수축할 수 있다고 IMF는 내다봤다.

다만 가스 공급 감소가 계속되면 화석연료 의존도가 큰 러시아 경제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WSJ는 부연했다. 가스 수출은 석유와는 또 다르게, 이미 투자해 건설된 파이프라인 인프라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이달 상반기 가스프롬의 생산량은 전년 동기 대비 35% 줄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가스 감산으로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제재가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러시아가 유럽을 상대로 벌이는 공개적인 가스 전쟁”이라며 “막힌 항구로 인한 굶주림, 겨울의 추위와 빈곤 등을 야기하는 단지 다른 형태의 테러”라고 강조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