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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사로잡은 톱 시니어 모델 리송

입력 | 2022-07-27 03:00:00

평범한 주부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모델로 변신한 리송. 김도균 프리랜서




‘꿈을 이루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고민하고 있다면, 모델 ‘리송’ 이해자 씨의 삶에 주목하자.

한 남자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손주 8명의 할머니로 살아온 그는 70세에 시니어 모델로 다시 태어났다.

시니어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재미와 새로움에 가치를 부여하는 MZ세대는 ‘멋지게 나이 든’ 시니어 모델에게 지지와 공감을 보낸다. 패션 유통업계의 시니어 모델 기용은 또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2019년 ‘제1회 KMA 시니어 모델 선발대회’에서 최우수상과 우정상을 받으며 프로 모델로 데뷔한 리송(73·본명 이해자) 씨도 그중 한 명. 캐주얼웨어 무신사 스탠다드, 애슬레저 룩 올리아즈 등 젊은 패션 브랜드 모델을 비롯해 앙드레김 쇼, 사랑가득나눔 시니어모델 자선패션쇼, 엑스와이 패션쇼, 캐나다 밴쿠버 패션위크 패션쇼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해왔다. 지난해에는 시니어 스타 오디션 프로그램 MBN ‘오래 살고 볼 일-어쩌다 모델’에 출연해 ‘쇼트 헤어’와 ‘열정’이라는 키워드로 대중에 얼굴을 알렸다.

그의 예명 ‘리송’은 자신의 성과 남편의 성을 합쳐 만들었다. 지금은 ‘모델’이라는 타이틀과 예명이 익숙하지만, 불과 4년 전만 해도 ‘할머니’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운 삶을 살았다. 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하고 1년 반 정도 약국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평생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평범한 전업주부였다.

시니어 모델에 도전하게 된 건 ‘빈둥지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세 자녀에 이어 여덟 명의 손자·손녀들까지 자신의 품을 떠났다고 느끼던 순간, 새로운 ‘리송’으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 ‘리송, 내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다’와 무크지 ‘리송’ 두 권의 책을 펴낸 리송을 만났다.


빈둥지증후군 겪고 난 뒤 비로소 찾은 천직


젊은 시절의 이해자 씨.

사진 촬영하는 모습을 보니 ‘톱 시니어 모델’이라는 수식어가 와닿네요.

항상 카메라 앞에 서면 ‘실컷 놀아보자’ 하는 마음이 들어요. 장난스럽게 그동안 숨겨놓았던 감정들을 다 끄집어낼 수 있어서 좋아요.

50년간 전업주부로만 지내온 삶이 잘 그려지지 않는데요.

가족들이 집에 오면 힘을 얻게 하려고 애썼어요. 제 역할에 늘 책임을 느낀 것 같아요. 24세에 동갑내기 남편과 결혼했는데, 둘 다 어린 나이였죠. 서로 좀 더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다 결혼해도 됐을 텐데 말이에요. 저도 저지만, 남편을 생각하면 너무 어린 나이에 가장으로서 책임을 지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남편이 자기 일을 잘할 수 있게끔 돕고 싶었던 것 같아요. 육아와 살림을 당연한 제 일로 여겼고, 큰 불만 없이 살아왔어요. 아이들이 학교 갔다 집에 오는 시간에는 늘 집에 있었죠.

‘내가 무대 체질이구나’ 하고 깨달은 건 언제부터인가요.

요즘이요.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즐겁다고 느낀 게 일흔이 되고부터예요. 그 전에도 아마추어 연극배우로 무대에 서 왔어요. 39세부터 49세까지 여성으로만 구성된 아마추어 극단에서 활동하다가, IMF 때 지원이 끊기면서 그만두게 됐죠. 미련이 남아 3년 전 동창 둘과 딸이 운영하는 극장에서 공연도 하고, 지난해에는 ‘아름다운 사인’이라는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어요.

배우의 길로 본격 나서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는 없나요.

그때는 연기보다 아이들이 우선이었어요. 그래도 보통 공연을 저녁에 하기 때문에 낮에는 연기 연습을 간간이 할 수 있었죠. 그러다가도 저녁이 되기 전에 늘 엄마와 아내 자리로 돌아왔어요. 처음부터 저녁은 내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아이들이 결혼하고 나서는 또 손자들에게 몰두했어요. 모두 8명인데, 큰손주는 대학생이고 막냇손자가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갔어요. 손자들이 먼저 저를 찾은 건 아니지만, 저는 할머니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과 자주 만나서 “네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우리에게 얼마나 기쁨을 주는지” 등에 대해 얘기해줬어요. 그런데 그것도 막냇손자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끝이 나더라고요(웃음).

막냇손자가 육아의 마침표였군요.

‘완전한 짝사랑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시간이 주어지니까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꽤 오래 방황도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이 신문에 난 시니어 모델 기사를 보여줬어요. 그날 바로 흥미가 생겨 시니어 모델 아카데미에 등록했어요. 2016년 동문 모임 사진반 친구들 덕에 사진 모델로 활동한 경험이 있긴 해요. 당시 친구들이 ‘리송’이란 모델 이름도 지어줬죠.


MZ세대 사이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


모델 ‘리송’이 되고 무엇이 달라졌나요.

전업주부 ‘이해자’ 안에 리송이 있었어요. 이해자 안에 있던 씨앗이 발아돼서 조그맣게 리송으로 자라난 거죠. 아직 꽃을 피우진 못했어요. 어떻게 피어날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더 재미있어요. 리송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뒤부터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겨났어요. 제 잠재력을 끌어내려는 사람들도 많아졌죠. 저는 무언가에 갇혀 있지 않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걸 좋아해요. 젊은 친구들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나이 들 수 있어요?”라고 물을 때 기분 좋아요.

20대 젊은 모델들과 어울리는 비결이 궁금해요.

젊은 친구들과 함께 작업하는 건 정말 재미있어요. 처음 만나면 그 친구들이 저를 어려워해서 눈을 잘 못 마주치거든요. 제가 말을 먼저 건네며 친해지려 애쓰죠. 10∼20분 정도 지나면 다른 모델과 똑같다는 걸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장래에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도 물어봐요. “진짜 이야기를 하자”고 하면서 편하게 분위기를 유도하는 편이에요.

크롭트 톱까지 잘 소화하는 비결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어떤 옷이든 눈빛이 중요해요. 젊은 패션을 입으면 저도 모르게 눈빛에서 장난기가 보여요. 또 우아한 의상을 입으면 시크한 눈빛이 되죠. 오랫동안 (옷을) 가장 단순하게 입으면서 그 옷답게 보이는 몸을 갖고자 노력했어요. 평소에는 심플한 옷을 좋아해요. 셔츠에 팬츠를 입고 거기에 행커치프 하나 매치하는 정도예요.


진짜 인생은 70부터


리송의 인생에서 남편은 어떤 존재인가요.

남편은 아주 단단한 운동장 같은 사람이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저를 지지해주죠. 꼬인 데 없이 모든 걸 그대로 보려는 사람이에요. 남편은 오래전부터 제 끼를 잘 알고 있었는데, 제가 그걸 감추고 70세까지 남편과 아이들만을 위해 살았으니까, 저한테 미안한 마음도 있고요. 지금은 남편보다 제가 더 바쁘게 살아요(웃음).

모델 활동에 가족들 반응이 궁금해요.

다들 응원해줘요. 자랑스러워하고. “엄마가 가장 좋아하고, 잘 맞는 일을 찾았다”고 하죠. 손자들은 “‘우리 할머니 대단하다” “할머니같이 되고 싶다”고 해요. 특히 남편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응원해주고 있어요.

신체적으로 가장 힘들다는 갱년기는 어떻게 극복했나요.

매일 산에 오르면서 저 자신과 치열하게 마주했어요. 도전의 시간이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모르겠어요(웃음). 어떤 때는 가슴에 많은 걸 짊어지고 갔다가 내려놓고 오기도 하고, 빈 몸으로 갔다가 많은 생각을 짊어지고 내려오기도 했죠. 그런 과정이 지금의 저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요.

건강을 위해 하는 운동과 식이요법이 있나요.

오전 5시에 일어나고, 화·금요일은 오전 6시부터 50분간 PT를 받아요. 등·가슴·다리 운동을 돌아가면서 하죠. 나머지 날들은 30분 유산소 운동을 하고 50분 요가를 해요. 나이가 있으니까 쉬는 걸 정말 잘해야 해요. 경계를 잘 느껴야 하죠. 조금 힘들면 바로 그만둬요. 욕심내서 더 하면 큰일 나거든요. 운동 후에는 간단히 아침을 먹어요. 채소와 과일을 샐러드 볼에 담아 먹는데, 드레싱 대신 물김치를 넣어요. 그래서 한 달에 두 번 물김치를 담그죠. 달걀 한두 알, 토스트 한 쪽, 커피 한잔을 곁들여 먹어요. 한 끼는 주로 밖에서 먹고요. 저녁은 안 먹거나 간단히 꿀을 넣은 쌍화차 한 잔, 치즈 한 조각 정도 먹어요. 남편은 맥주 한잔에 땅콩과 치즈를 먹고요. 그렇게 간단히 먹으니 밥을 차리지 않아도 돼 참 편해요(웃음).

70대라는 나이는 인생에서 어떤 시기인가요.

마지막 불꽃, 터지기 전 마지막 불꽃인 것 같아요. 터지면 사그라들거든요. 사실 건강에 대해 늘 아슬아슬해요. 하루하루가 굉장히 소중해요. 내일 못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죠. 지금 당장은 건강하지만, 바로 다음 날을 장담할 수 없는 나이니까요. 늘 조심스럽고 아슬아슬한 상황이지만 그동안 많이 모인 폭죽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터질까’ 하는 기대감이 있어요. 인간은 길 위에 있어요. 태어나는 순간에 길 위에 놓이죠. 그 위에서 자기가 선택하는 거예요. ‘돌멩이를 피해서 이쪽으로 갈까, 웅덩이를 피해서 저쪽으로 갈까’ ‘아니야, 이걸 넘어서서 가야지’ 하는, 끊임없는 고민의 연속 끝에 종착역으로 가죠. 종착역은 어딘지 아무도 모르는데, 그래서 더 재밌는 것 같아요.


이진수 기자 h2o@donga.com
두경아 프리랜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