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길을 걷다 보면 내가 아는 모든 게 사라져. 무언가 거대한 빛 덩이라도 떨어지면
돌아갈 수 있진 않을까.’
넘넘 멤버는 3명. 삐삐밴드 출신인 보컬 이윤정(46), 인디밴드 효도앤베이스로도 활동 중인 기타리스트 이승혁(37)과 베이시스트 이재(28)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소외감을 노래에 담았다. 지난해 낸 앨범 ‘NEWS’의 수록곡 ‘말이 먼저 나는 새’를 통해 불확실한 것들을 공유하기에 급급한 현대인들을 풍자한데 이어 이번 음악 역시 그들만의 실험적 음악세계에 사회 풍자적 메시지를 담았다.
●팬데믹이 가져온 소외감 담은 싱글 ‘월드 뮤직’
“반스 뮤지션 원티드에서 1등을 하면서 반스 글로벌 뮤직 홍보대사인 앤더슨 팩과 함께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졌죠. 미국 텍사스에서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공연도 계획돼있었는데 전부 코로나 19로 취소됐어요. 점점 포기하게 되고 소외됐다고 느끼고. 다들 지쳐가는 걸 보고 그 감정을 음악으로 만들어보자고 했어요.”(이윤정)
뮤직비디오에도 코로나 19가 준 불안감을 상징적으로 담았다. 세 멤버의 아바타(가상현실 캐릭터)가 큰 얼굴, 마른 팔과 다리의 기형적인 모습으로 등장해 하늘에서 떨어지고 허공을 헤집는 모습은 기괴하다. 뮤직비디오 연출은 이윤정의 남편이자 설치미술가 이현준이 맡았다.
“세 아바타 모두 본인의 상황을 컨트롤할 수 없는 모습이에요. 저는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고, 이재는 누군가에게 급히 전화를 해요. 승혁이도 손목이 돌아가면서 바닥에 주저 앉아버려요.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자살을 표현한 것이고, 이재가 전화를 하는 건 위기의 상황에서 구조요청을 하는 것이죠.” (이윤정)
●“대중성은 환상” 세상에 없는 음악 만드는 넘넘
“원래는 제가 주제를 잡고 주제에 맞는 비트와 음악을 만들어보는 방식으로 작업했다면, 이 친구들은 사운드 소스를 계속 던지면서 ‘이거 어때요?’라고 제안해요. 삐삐밴드에선 오빠들이 워낙 연주를 잘하니 그 틀에 맞춰 연주를 잘 하는 게 중요했는데 이 친구들과 있으면 즉흥적이 돼요. 예를 들어, 혁이가 무대 위에서 갑자기 절 쳐다보며 씩 웃으며 원래와 다르게 연주하면 저도 아무 가사나 읊어요.”(이윤정)
월드 뮤직을 마지막으로 넘넘과 현재 소속사 EMA의 계약은 종료된다. 이윤정은 조만간 미국으로 떠난다. 그간 음악을 비롯해 무대연출, 미술전시 등 다방면에서 종횡무진 했듯, K팝 관련 팝업 전시와 공연 기획, 상품 제작을 병행할 계획이다. 이승혁과 이재는 효도앤베이스 2집 앨범 발매 준비에 당분간 매진한다.
“넘넘의 해체냐”는 질문에 “마지막은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대중성보다 하고 싶은 음악에 순수한 열정을 다하는 넘넘의 활동은 계속된다는 뜻이다.
“넘넘은 가수라는 직업의 목적의식으로 돈을 벌자고 시작한 게 아니에요. 저희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 된 거죠. 사람들이 좋아할, 대중적인 음악은 차고 넘쳐요. 기존에 없는 새로운 제안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넘넘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음악도 있네?’라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걸로 만족해요.”(이윤정)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