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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장택동]기대수명 2위-자살률 1위

입력 | 2022-07-28 03:00:00


한국처럼 국민의 수명이 빠르게 늘어난 나라도 드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 기준으로 1970년 한국인들의 기대수명은 62.3세에 불과했다. 현재 OECD 가입국 기준으로는 밑에서 다섯 번째로 수명이 짧은 국가였다. 반세기가 흐른 2020년에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져 한국은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수명이 긴 나라가 됐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신체적 건강이 눈에 띄게 나아진 것과 달리 마음의 질병은 심각하다.

▷기대수명에는 의료 접근성, 보건 수준, 영양 상태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이런 분야가 개선되면서 한국의 기대수명이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한국인들의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OECD 평균의 2배를 넘고, 인구 1000명당 병원 병상 수도 한국이 OECD 국가 중 가장 많다. 안정된 건강보험 제도와 세계적 수준의 의료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이와 함께 건강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높아졌다. 해마다 흡연율은 줄고, 술은 덜 마시는 추세다.

▷그래서 기대수명이 긴 국가들을 보면 일본, 노르웨이, 호주, 스위스 등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사회적으로 안정된 선진국들이 많다. 한국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으로 들린다. 한국이 머지않아 세계 최장수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이 건강한 선진사회가 됐다’고 말하기는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5.4명으로 OECD 국가 중 눈에 띄는 1위다. 다른 장수 국가들의 자살률이 10명대 초반인 것과 대비된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한국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낮은 편이었지만 외환위기를 겪은 1990년대 말부터 급격히 높아졌다. 이제 고혈압으로 숨지는 사람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다. 자살에 이르게 된 동기를 살펴보니 10명 가운데 4명이 ‘정신적 문제’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

▷전문가들은 취업과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 경제적 궁핍, 신체적 고통 등으로 마음이 병든 사람은 늘어나는데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것이 높은 자살률의 주요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우울증을 가진 국민의 비율이 가장 높은 편이지만 치료율은 미국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부터 사라져야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수명은 길어졌지만 마음속에 지옥을 안고 사는 국민이 많다면 장수 국가가 된들 마냥 축복만 할 일은 아닐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