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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송충현]인센티브 무장한 미국, 규제 가득한 한국

입력 | 2022-07-28 03:00:00

송충현 산업1부 기자


미국 내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세제나 금융지원 등 재정적 인센티브를 주는 내용의 반도체 지원 플러스법이 이르면 이달 중 미국 상원 표결을 앞두고 있다. 26일(현지 시간) 미 상원 전체회의에서 필리버스터 없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토론 종결 투표’가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하며 사실상 반도체 지원법이 상원을 통과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는 문제에 대한 적극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최근 국내 대기업의 미국 투자 계획이 속속 공개됐다. 삼성은 1921억 달러 규모의 중장기 투자 계획을 미 주정부에 제출했다. 미국에 11개의 반도체 생산라인을 추가로 만드는 내용이다. 현대차그룹도 조 바이든 대통령 방한 시 미국 조지아주에 55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SK그룹도 220억 달러 규모의 대미 신규 투자 계획을 27일 밝혔다.

국내 기업들이 속속 미국 투자에 나서는 이유는 ‘프렌드쇼어링’ 등 동맹국과의 경제 협력을 공고히 한다는 차원이 크다. 안정적인 공급망 및 시장 확보를 위한 전략도 자리한다. 하지만 기업 관계자들은 현지 투자를 결정한 중요한 요인으로 반도체 지원법과 같은 ‘인센티브’를 꼽는다.

내년부터 미국 조지아에 전기차 공장을 짓는 현대차는 투자액 55억 달러의 30%가 넘는 18억 달러 규모의 인센티브를 받게 됐다. 재산세와 법인세 감면 등이 대표적이다. 삼성이 ‘미확정’이란 단서를 달긴 했지만 이 같은 장기 투자 계획을 미국 주정부에 제출한 것도 인센티브 확보 차원으로 풀이된다. 텍사스주에 설비 투자한 기업에 대해 면세 및 자금지원 혜택을 주는 ‘챕터313 인센티브’가 올해 말 만료되는데 이를 미리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투자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1980년부터 지난해까지 우리나라가 해외에 직접 투자한 금액은 5515억 달러, 외국인이 국내에 직접 투자한 금액은 2633억 달러다. 정부도 국내 투자 매력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도입 중이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추고 기업이 국내외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금에 부과되는 세금도 줄어든다.

하지만 기업 투자심리의 발목을 여전히 붙잡고 있는 건 ‘규제’다. 새 정부는 각 기업들과 경제단체를 통해 경제 규제 혁신 태스크포스(TF)에서 다룰 규제 과제를 모집했는데 각 단체들은 국회 의결 없이 정부 차원에서 바로 해결할 수 있는 시행령 이하 규제를 중심으로 한 규제 목록을 냈다. 국회에서 규제 혁신 논의가 지지부진한 걸 보느니 정부 자체적으로 고칠 수 있는 규제부터 해소해 보자는 의도다.

이날 SK는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훨씬 규모가 큰 국내 투자가 계획대로 진행돼야 해외 투자도 함께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그만큼 기업들의 국내 투자 수요도 충분하다는 의미다. 새 정부는 투자 수요가 모두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게 규제 완화를 통한 국내 투자 여건 개선에 힘써야 한다. 생색내기용 규제 몇 건을 풀어주는 것으로는 강력한 인센티브로 무장한 해외 국가와의 투자 유치 경쟁에서 이기기 어려울 것이다.



송충현 산업1부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