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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할 수 없는 지옥이 펼쳐지나[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입력 | 2022-07-28 03:00:00

중국이 코로나 발생 이후 미얀마와의 국경에 새로 설치한 국경 철조망. CCTV와 감지센서가 설치된 이런 철조망을 무사히 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사진 출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주성하 기자


올해 상반기 입국한 탈북민은 19명에 불과했다. 지난해 상반기엔 36명, 2021년 전체로 63명밖에 입국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그보다도 더 줄어들 것이다.

지난해 입국자 중 북한을 떠나 한국으로 입국하는 통상 경로인 중국과 동남아를 거쳐 온 탈북민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입국자 대다수는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근로자로 일하다가 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올해 역시 사정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을 거쳐 탈북민이 오지 않는 이유는 우선 탈북이 막혔기 때문이다. 북한은 코로나가 시작되자 국경 1∼2km 구간을 접근금지 구간으로 정하고 밤에 접근하면 사살하도록 국경경비대에 지시했다. 철조망도 새로 세웠고 지뢰까지 매설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걸 넘어 중국 땅에 도착해도 이번에는 더 넘기 어려운 철조망이 기다린다. 땅을 파지 못하게 콘크리트로 기초를 만들고 굵은 철사로 촘촘히 엮은 높은 울타리를 세운 뒤 그 위에 다시 원형 철조망을 쳤다. 차로 일산 자유로를 따라 달리다가 한강 옆에서 보게 되는 군 경계용 철조망과 똑같다. 폐쇄회로(CC)TV도 1∼2km 간격으로 달아 철조망 앞에서 조금만 시간을 지체하면 바로 중국 변방대가 출동한다. 그렇게 잡혀 끌려가면, 코로나 기간에 탈북했다는 죄로 살아남기 어렵다. 목숨을 여분으로 몇 개 가지고 있지 않는 한 탈북할 엄두도 못 내는 것이다.

북중 국경이 봉쇄되면 코로나 이전에 탈북해 중국에 숨어 살고 있던 탈북민이라도 한국에 와야 하는데 이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우선 지금까지도 한국에 오는 길이 없어 중국에 사는 탈북민 수가 많지 않다. 고작해야 수천 명 정도로 추산된다. 또한 코로나 통제로 지역 간 이동이 철저히 차단됐거나 검문이 엄격해져 신분증이 없는 탈북민은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걸 뚫고 기존의 탈북 통로인 동남아 국경까지 와도 또다시 높은 장벽이 막아선다. 외신들에 따르면 중국은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남부와 동남아 국경 사이에 길이가 4800km에 이르는 철조망을 쳤다고 한다. 사실상 남부의 ‘만리장성’이 된 이 철조망 역시 북중 국경의 철조망과 비슷하게 최대 3.6m의 높이로 설치됐고, 감시카메라와 센서로 주야간 감시된다. 2000년대 초반 탈북민들이 사용하던 몽골행 루트에도 철조망이 대거 보강됐다.

결국 탈북해 한국까지 오려면 북중 국경을 넘을 때 목숨을 두 번 걸면서 철조망을 넘고, 검문을 피해 그 넓은 중국을 가로질러야 하며, 다시 남부에서 목숨 걸고 또 철조망을 넘어야 한다. 지난해엔 이 어려운 미션에 성공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알려졌다. 올해에도 있을 것 같지 않다. 사실상 북한이 탈출이 불가능한 감옥으로 알려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앨커트래즈처럼 변하고 있는 셈이다.

그토록 원하던 탈북 제로를 달성했다고 기뻐할진 모르겠지만, 이러한 상황의 변화는 사실 최근 20일째 자취를 감춘 김정은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닥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을 때, 북중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탈북했다. 당시엔 국경에 철조망도 없었고, 경비대 숫자도 훨씬 적었다. 김정일 시대엔 중국에서 체포돼 북송돼도 정말 굶어 죽을 형편에서 탈북한 것이라는 것이 인정되면 이를 감안해 강제노동 몇 달 시키고 풀어주었다. 지금처럼 탈북을 곧 반역이라고 간주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약 20만 명이 중국으로 탈북한 것으로 추산되며, 이들이 보내준 돈으로 북한에 남은 많은 가족들도 살았다.

그러나 이젠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다시 시작돼도 도망 갈 길조차 없어 앉아서 굶어 죽어야 한다. 쌓여가는 그 수많은 시체와 원망을 김정은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 북한 내부 경제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코로나 봉쇄로 2년 반 동안 수출입이 차단된 데다 비상용 창고도 다 바닥이 난 지 오래다. 이렇게 버틸 여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올해 들어 연이어 닥친 극심한 가뭄과 홍수로 흉작이 오면 대량 아사는 현실이 된다. 벌써 황해도에선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사람이 죽어 간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얼마 전 수해로 떠내려 온 북한 주민으로 추정되는 시신 4구가 임진강 하구에서 발견됐다. 슬픈 비극의 전조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죽어서라도 그 땅을 벗어나면 다행인 걸까.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