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러 공급축소에 유럽 가스값 하루새 15% 폭등… 기업들 “감당 불가”

입력 | 2022-07-29 03:00:00

美 가스값도 14년만에 최고 기록… 獨 “심각한 상황… 소비 줄여야”
러 의존도 높은 이탈리아도 비상… 전문가 “유로존 경기 침체 우려”
가스값 급등, 인플레이션 자극… 英 치즈버거값 14년만에 20% 올려



웅장한 야경으로 유명한 독일 수도 베를린의 대성당이 27일 밤 조명을 절반만 켠 채 어둠에 싸여 있다. 베를린 시의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에너지 공급난이 심각해지자 전력 소비를 줄이기 위해 이날부터 시내 주요 건물 200곳의 야간 조명을 순차적으로 끄기로 했다. 베를린=AP 뉴시스


러시아가 27일 독일을 통해 유럽 국가들로 공급되는 천연가스를 절반으로 줄이자 세계 가스 가격이 급등했다. 유럽에선 하루 만에 15%, 미국에선 이달 들어 66% 치솟았다. 가스값 직격탄을 맞은 유럽 기업들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고 호소한다. 특히 제조업 활동이 위축돼 유럽 경기가 침체될 것이란 분석이 곳곳에서 나온다. 세계 가스 가격이 전체적으로 상승하며 글로벌 인플레이션 추세를 더 가파르게 할 것으로 우려된다.
○ “러, 이렇게 빨리 가스값 올릴 줄이야”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에 따르면 유럽 천연가스 기준가로 삼는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현물 가격(8월물)이 이날 오전 9시 22분 메가와트시(MWh)당 228유로(약 30만3000원)로 6일 연속 상승했다. 전날 종가(199유로) 대비 15%가량 올랐다. 1년 전(22.97유로)보다는 약 10배로 뛰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전날 독일 벤치마크 에너지 가격도 가스값 급등 영향으로 MWh당 370유로를 기록해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 뉴욕상업거래소(NYMEX) 천연가스 가격(8월 만기 기준)도 같은 날 장중 한때 11% 이상 급등해 MMBTU(열량단위)당 9.75달러를 기록했다고 CNBC방송이 보도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7월 이후 14년 만의 최고치다.

11일부터 열흘간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축소한 러시아가 27일 추가 중단을 예고했는데도 가격이 치솟는 건 가스 공급 축소가 예상보다 더 빨랐기 때문이다. 제임스 헉스텝 S&P글로벌 코모디티 인사이츠 매니저는 FT에 “모두가 러시아의 가스 공급이 줄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줄어들진 몰랐다”고 말했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경제장관은 현지 언론에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독일이 가스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정부는 여차하면 독일에 가스 소비량의 2%인 20테라와트시(TWh)를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독일처럼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은 이탈리아도 비상이 걸렸다. 로베르토 친골라니 이탈리아 생태전환부 장관은 이날 올해 말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완전히 중단한다면 내년 2월쯤 가스 부족 현상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 “유럽, 경기 침체에 들어갈 것”
가스값 급등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26일 유로화 가치는 전 거래일보다 0.9% 떨어진 1.012달러였다. 에너지 컨설팅기업 리스태드의 카슈알 라메시 수석 연구원은 FT 인터뷰에서 “(가스값은) 많은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곧 경기 침체 경보가 울리는 걸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CNBC에 따르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유로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21년 5.4%에서 올해 2.5%로, 내년에는 1.2%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투자은행 JP모건도 가스 공급 중단으로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완만한 경기 침체에 들어가 유럽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을 제한할 것으로 전망했다.

가스 가격 급등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유럽에서도 물가 급등세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영국에선 맥도널드가 대표 메뉴 치즈버거 가격을 14년 만에 20% 인상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