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5’.
김도형 기자
머스크의 속뜻까지 알 길은 없다. 그렇지만 전기차 전환기에 한국 차 산업을 대표하는 현대차가 상당히 선전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해부터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을 기반으로 출시되고 있는 현대차와 기아의 전기차 모델은 미국과 유럽 같은 주요 친환경차 시장에서 호평받고 있다. 테슬라처럼 선구적인 이미지의 브랜드는 아니지만 안정된 성능과 긴 주행거리, 합리적인 가격이 다른 브랜드보다 돋보인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친환경차 영역에서 하이브리드차와 수소전기차, 순수 전기차 모두를 진지하게 생산한 거의 유일한 기업이다. 미국과 유럽의 완성차 기업들은 전기차에는 공을 들였지만 다른 친환경차에는 그리 힘을 쏟지 않았다. 일본이 특허를 장악한 하이브리드차 시장에 굳이 끼어들지 않았고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은 수소전기차에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하이브리드차 시장을 장악한 도요타 등의 일본 기업은 거꾸로 전기차에 소극적이었다.
어떤 친환경차가 미래를 지배할지 점치기 힘들었던 불확실성 속에서 현대차는 결국 모든 카드를 준비했다. 이런 모습은 한국 기업들이 구사해 온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과 유사하다. 늘 긴장하면서 빠르게 적응하는 전략. 이는 시장을 지배해 본 적이 없는 한국 기업들의 힘든 사업 방식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한순간에 밀어닥친 전기차 시대에 한국 차 산업이 크게 뒤처지지 않을 수 있게 해줬다.
전기차 시대는 이제 막 개화기를 지나고 있다. 판매량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면서 줄어든 보조금에 내연기관차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도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중요한 것은 ‘한국이 계속 잘할 것인지’일 수밖에 없다. 전기차 전환기에 잡은 작은 기회를 얼마나 잘 살릴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지난해에도 판매량 세계 1위 자리를 지킨 ‘공룡’ 도요타는 이제 본격적인 전기차 추격전을 예고하고 있다. 현대차를 짐짓 치켜세워 준 머스크의 테슬라는 막대한 자율주행 데이터를 축적하면서 성큼 앞서나가고 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