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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지은 집[공간의 재발견/정성갑]

입력 | 2022-07-29 03:00:00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집의 환대가 가장 먼저 시작되는 곳이 주차장이잖아요. 그러니 그곳을 이왕이면 밝고 기분 좋게 만들면 좋지요. 작은 사각 연못도 만들고 수국도 심은 이유입니다. 욕실은 인간의 모든 감각이 살아나는 곳이에요. 옷을 다 벗으면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촉감부터가 달라지기 때문에 미끄럼을 방지하면서도 발끝에 기분 좋게 와 닿는 소재를 씁니다. 나무 하나도 신경 써서 골랐어요. 제가 선호하는 나무는 줄기가 여러 개인 다관형으로 특정한 형태가 도드라지지 않는 거예요. ‘주장하지 않는’ 나무라야 공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거든요.”

정재헌 건축가가 본인이 설계한 집을 보여주며 들려준 이야기들이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있으면 내가 다 황홀해진다. 이런 분과 집을 지은 건축주는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절로 든다. 집 자체가 세심하게 조율되고 정성껏 구현된 비스포크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되는 셈이니 두고두고 흐뭇할 것 같다.

집의 형태에서도 다양성이 담보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건축가의 집’이란 토크를 시작한 지 3년이 됐다. 초기에만 해도 언감생심 ‘비싼’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길 수 있다니, 돈 많은 일부 부자의 호사로 치부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세상에는 젊은 건축가도 많고 10평 미만의 오두막을 포함해 집의 종류도 그만큼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는 좀 더 적극적으로 건축가를 찾아 나선다. 나 역시 토크를 할 때마다 많이 배우고 느낀다. 집만큼 좋은 것은 없고 나를 가장 잘 아는 존재가 다름 아닌 집이 되는 것은 일생일대의 행운이 아닐까 싶다.

건축가라는 직업 자체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이들이 이성과 감성, 직관과 은유, 리듬과 정적, 효율과 낭만 사이를 능숙하게 오가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다. 분명 숫자와 공법이 중요한 직업인데 마침내 완공된 집 구석구석을 살피다 보면 그 안에 국어, 윤리, 체육, 미술, 음악이 다 들어있다. 무엇보다 건축가는 자칫 부주의하게 매몰될 뻔한 시간과 공간을 찾아주는 사람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에서 건축주는 엄지척의 풍경과 장면, 빛과 소리를 더해가게 된다. 나는 그것 역시 건강하고 특별한 취향이라 믿는다. 물론 모든 건축가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건축가가 내 인생 최고의 ‘산타클로스’가 될 수 있다고 믿고 그의 생각과 마음을 존중하면 그만큼 좋은 집을 갖게 될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건축가에게 집을 짓는다는 건 세상이 정한 규격과 상관없이 마침내 나의 세상을 갖게 되는 일이 아닐지.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