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가정 사정’ 출간 조경란 “아픈사람은 아픈사람 버리지 않아 상실겪은 가족 지키는 인물들 그려”
25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소설가 조경란이 신간 ‘가정 사정’을 소개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가정 사정으로 쉽니다.’
2017년 말 동네 식당 입구에 삐뚤빼뚤 손 글씨로 쓴 안내문 앞에서 소설가 조경란(53)은 발길을 멈췄다. 어째서 ‘개인 사정’이 아니라 ‘가정 사정’이라고 썼을까. 어쩌면 식당 주인에게 개인보다 더 큰 일이 벌어진 건 아닐까. 나보다 더 커서 나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정이 생긴다면 우리는 어떻게 딛고 일어설 수 있을까. 다시 식당 문이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식당 앞을 서성였다. 하지만 끝내 식당은 다시 문을 열지 않았다.
“그 안내문이 계속 제 마음에 남아 있었어요.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상실의 아픔을 겪는 어떤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죠.”
그가 가장 마지막까지 집필한 ‘개인 사정’은 어릴 적 아이들을 죽이고 자살하려던 부모에게서 살아남은 두 남매가 한 아이를 돌보는 이야기다. 백화점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인주는 알코올의존증으로 병원에 입원한 오빠의 부탁으로 일곱 살 규이를 돌보게 된다. 오빠와 함께 살던 아이 엄마마저 집을 떠나 집에 홀로 남겨진 규이를 거두는 건 인주에게 분명 과분한 일. 하지만 인주는 홀로 남겨지는 아픔을 알기에 규이 곁을 지켜준다.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던 오빠의 말을 떠올리며.
“홀로 남겨진 사람은 상실이 한 인간을 얼마나 훼손시키는지 알고 있어요. 그 아픔을 알기에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을 버리지 않고 곁에 머물죠. 누군가를 먹이고 거두는 것은 분명 고단한 일이지만 결국 그 일이 나를 살게 하는 힘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표제작 ‘가정 사정’은 2017년 말 그의 마음에 남았던 안내 문구로 끝맺는다. 양장점을 운영하는 50대 여성 정미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어머니와 남동생을 잃고 아버지와 단둘이 남겨진다. 가족 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주던 살가운 남동생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말없는 부녀 사이에는 적막만 흐른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순간 이들은 서로의 곁을 지킨다. 경비 근무를 서다 다리를 다친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정미는 양장점 문을 닫고 병원으로 향하며 안내문을 붙인다. ‘가정 사정으로 쉽니다.’
“생업을 접어두고 아버지에게 향하는 정미처럼, 당신에게도 당신 곁을 지켜줄 분명한 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어요.”